<기자 멘트>
평화롭던 한 동네가 사기 사건으로 쑥대밭이 됐습니다.
피해자가 50여 명, 피해 액수는 70억 원에 이릅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한 여성이 저지른 일입니다.
세입자에게는 전세 계약을 하는 것처럼, 집주인에게는 월세 계약을 하는 것처럼, 이중 계약을 한 겁니다. 그 뒤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자신이 받아 가로챘습니다.
잠적 일주일만에 검거됐는데, 70억 원이나 되는 돈이 다 사라진 뒤였습니다.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습니다.
2009년부터 조금씩 올려주며 늘려온 전세 보증금 1억 원.
이모 씨에게는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이었습니다.
<인터뷰> 이○○(피해자/음성변조) : "공사장 다니면서 직장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조금씩 모아서 가게 얻고... 잠만 자고 눈만 뜨면 일했어요." 그런 돈을 하루 아침에 고스란히 날리게 된 겁니다.
<인터뷰> 이○○(피해자/음성변조) : "아침에 자고 있는데 (집)주인이 왔어요. 주인이 하는 얘기가 당신이 왜 여기에 사느냐..." 얼마 전 집주인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왜 여기서 살고 있느냐는 황당한 질문.
이 씨는 갖고 있던 전세 계약서를 내놨습니다.
<인터뷰> 이○○(피해자/음성변조) : "주인이 자기는 월세로 계약했는데 어째서 전세 계약이냐... 얼마냐고 했더니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85만 원이래요."
이 씨가 갖고 있는 계약서에는 전세 보증금 1억 원이 분명히 적혀 있는데, 집주인이 내민 계약서는 보증금 천만 원짜리 월세 집으로 돼 있었습니다.
<녹취> 부천원미경찰서 관계자 (음성변조) : "(중개업자가) 부동산을 이중으로 계약해서 전세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몽땅 갖고, 제3자와 동행해서 집주인하고 월세 계약을 한 뒤 월세를 꼬박꼬박 내준 거예요."
모두 부동산 중개업자인 김모 씨가 벌인 짓이었습니다.
이 씨에게서 1억 원을 받아 가로채고, 그 돈 일부로 집주인에게 이 씨 대신 월세를 내왔던 겁니다.
집주인은 월세를, 임차인은 전세를 선호한다는 점을 노리고, 이렇게 이중으로 거짓 계약을 해 왔습니다.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박○○(피해자 /음성변조) : "(집주인) 할머니가 쫓아왔더라고요. 월세가 안 들어온다고. 무슨 소리냐, 나는 전세인데... 그랬더니 속았다는 거예요."
<인터뷰> 정○○(피해자 /음성변조) : "피해자들끼리 보니까 수법이 비슷했고요. 그때야 (사기 사실을) 안 거죠."
피해자들 중에는 김 씨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줬다 떼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피해자/음성변조) : “급매를 잡아야 돼. 이익이 생기면 오백만 원, 천만 원이 생겨.”(이러면서) 급매물이 나와서 잡아야 되니 빌려달라고. 이자 쳐줄 테니까..."
<인터뷰> 김○○(피해자/음성변조) : "이것만 하면 돈이 생기니까 부동산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면서 한 달만 쓰고 줄 테니까 빌려달라고... '이거 메우면 용돈을 좀 드리겠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드러난 사기 피해자만도 모두 50여 명. 피해 금액은 무려 70억 원이 넘습니다.
사기를 친 김 씨는 10년 넘게 한 동네에 살면서 부동산을 운영해 왔습니다.
평상시, 이웃들에게 인심 좋게 굴었던 탓에, 이웃 상인들은 아직도 김 씨의 사기 행각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녹취> 인근 상인(음성변조) : "손님한테 최선을 다하는 분 같았어요. 전혀 그럴 사람 같지 않은데 그래서 정말 당황했죠. (동네가) 지금 난리에요."
김 씨를 통해 부동산 거래를 해 온 주민들도 의심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정○○(피해자/음성변조) : "십 몇 년 동안 계속 한자리에서 (부동산) 했다고 하지, (근처) 아파트 넓은 집에 살지... 안 믿을 수가 없었죠."
<인터뷰> 이○○(피해자/음성변조) :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옹호했어요.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죠."
그동안 김 씨는 수완 좋은 부동산 중개업자였습니다.
세입자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척척 구해다 줬습니다.
<녹취> 이○○(피해자/음성변조) : "전세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김 씨의) 부동산에서 맡고 있는 (저렴한) 게 있다고... 혹할 수밖에 없는 거죠."
<녹취> 정○○(피해자 /음성변조) :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러니까 (전세금을) 깎아준 거예요. 당연히 은인이라고 생각했죠."
뒤늦게 알고 보니, ‘수완’이 아닌 '사기‘였던 겁니다.
세입자들이 계약 과정에서 집주인을 만나겠다고 하면, 임기응변으로 대처했습니다.
<녹취> 정○○(피해자/음성변조) :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일일이 오라고 하느냐... (집주인) 신분증도 있고 도장도 있고 등기부 등본도 갖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
<녹취> 박○○(피해자/음성변조) : "집주인이 계속 기다리다가 갔대요. 그러면서 (계약금을) 나한테 주면 전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김 씨는 그렇게 가로챈 돈으로 계속 돌려막기를 하며 사기 행각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다, 수십 억 원을 가로채 달아났고, 잠적 일주일 여 만에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더 기막힌 사실은, 김 씨가 자격증도 없이 부동산 중개업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녹취> 부천원미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원래 (자격이 있는) 남편이 2001년에 정상적으로 부동산 개업을 한 거예요. 2007년까지 (부부가 같이) 했어요. (남편이) 몸이 안 좋아져서 아내 혼자 그 이후로 운영하게 된 거죠."
김 씨는 검거 당시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70억 원이나 되는 돈을 어디로 다 빼돌린 걸까.
<녹취> 부천원미경찰서 관계자(음성변조) : "남은 돈이 거의 없다고 봐야 돼요. 여기서 빌려서 (빚) 갚고, 여기서 사기 쳐서 (빚) 갚고... 계속 돌려막은 거죠."
피해자들이 김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이대로라면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엄동설한에 거리로 내쫓길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입니다.
<녹취> 최○○(피해자/음성변조) : "저희가 두려운 거예요, (집주인에게) 전화가 오면. "나가." 이렇게 나올까봐...."
<인터뷰> 이○○(피해자/음성변조) : "새벽까지 장사를 하는데 잠을 줄이고 (낮에) 일을 나가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생활할 수가 없거든요."
<인터뷰> 전가영(변호사/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소유자) : "주민등록증과 등기부등본 상의 소유자 정보가 일치하는지 확인하셔야 되고요. 이후에도 보증금을 입금하는 계좌가 소유자 명의의 계좌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경찰은 김 씨가 돈을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KBS뉴스 20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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