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떠난 토담집…고민 엿보이는 책·메모들

　

허름하고 작지만 아늑한 방,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바닥에 쌓아둔 책, 낡은 이불과 처마 아래 쌓인 장작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2년 2개월간 칩거해 온 전남 강진의 토담집은 소박했다.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다"는 그의 표현처럼 깊은 고뇌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손 전 고문이 정계 복귀를 발표한 국회 정론관에 이목이 집중된 지난 20일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白蓮寺). 주차장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니 손 전 고문이 머물렀던 낡은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달린 붕어 모양의 풍경(風磬)이 연신 맑은 소리를 내는 토담집이다.

백련사 측의 허락을 받아 찾아간 토담집 마당에 도착하자 개집 안에서 까만색과 갈색 털이 뒤섞인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손 전 고문이 키우던 2마리의 진돗개 중 한 마리인 '해피'다.

손 전 고문은 토담집을 떠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내가 간다고 하니까 어제부터 (진돗개들이) 밥을 안 먹는다"며 걱정했다. 백련사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의 측근이 금명간 데려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변이 검게 그을린 아궁이가 놓인 부엌을 거쳐 들어가니 거실 겸 안방이 나온다. 6.6㎡(약 2평) 안팎의 아담한 방 안은 군불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 따뜻했다. 한쪽 벽면에는 달마도가 담긴 액자가 걸렸고 그 아래로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방 앞쪽 문만 열면 강진만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다.

책상 옆에 세워진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100여 권이 넘는 책이 책장을 채우고도 남아 방바닥에 쌓아올려져 있었다.

책의 종류는 다양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펴낸『대통령의 자격』, 소설가 김진명의 실명 정치 소설 『킹 메이커』,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관용 교수 등이 쓴 『문제는 리더다』등이 눈에 띄었다. 방 안에는 인쇄된 기자회견문과 '안철수 당' '이해찬' 등 30여 명의 이름을 자필로 적은 A4용지도 있었다.

토담집 옆쪽 처마 아래에는 겨울나기에 필요한 땔깜용 나무가 성인 키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2014년 7·30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 강진에 올 때만 하더라도 정계에 복귀하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진 손 전 고문이 남겨놓은 흔적이다.

손 전 고문은 오전에는 부인 이윤영 여사와 함께 토담집에서 식사를 하고 점심은 주로 사찰에서 승려나 신자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백련사에서 생활 중인 김모(67)씨는 "손 전 고문은 아침부터 낮 사이 독서나 만덕산 산행을 했으며 저녁에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백련사 회주 여연 스님은 "손 전 고문이 머물던 토담집은 원래 스님들이 수행하며 사용해오던 곳"이라며 "손 전 고문 측이 나머지 짐을 정리하기 위해 조만간 다시 강진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사진 프리랜서 오종찬

[출처: 중앙일보] 2016.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