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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연체율 비상등’ 은행권 심상찮다


중기대출 연체율 2.67%…4년만에 최고

내달 구조조정 본격화땐 대손충당금 크게 늘어

이자수익은 줄어…서민들엔 은행문턱 높아질듯

 
은행권의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 경기침체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는 탓으로, 은행과 이용자 모두에게 힘겨운 한 해를 예고하는 신호다.
 
연체율 급등에 시중금리 하락으로 은행의 이자부문 수익은 대폭 줄고 있다. 이익 전망도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연체율 관리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의 처지를 고려할 때 낮은 신용등급의 중소기업이나 가계에는 은행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18일 발표한 국내 은행의 연체율 현황을 보면, 2월말 현재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1.67%로 나타났다. 1년 전에 견주면 0.66%포인트, 지난해 말보다는 0.59%포인트 급등한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가 가장 두드러졌다. 중기 대출 연체율은 2월말 현재 2.67%로, 1년 전보다 무려 1.27%포인트나 높아졌다. 2005년 5월 이후 3년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가계 대출 연체율은 0.89%로 비교적 낮았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중기 대출의 만기를 대부분 연장해주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연체율은 표면적인 통계치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여겨진다.

 

은행들은 연체율 관리와 중소기업 지원 차원에서 만기 연장뿐만 아니라, 신규 여신도 제공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은행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연체율 잡기에 나서고 있다”며 “그만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대출 부실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연체율 상승은 은행 순익에 곧바로 영향을 끼친다. 은행법과 관련 규정에 따라 연체 기간 등을 고려해 채권 건전성 분류를 새로 해야 하고, 그에 따라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충당금은 꿔 준 돈이 떼일 것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자금으로 회계상 순익 감소 요인이다.

 

중기 대출의 연체율 급등 소식에는 금융당국도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말에 올해 성장률을 약 3%로 예상하고 중기 대출 목표액을 50조원으로 잡았지만, 지금은 자금 수요 자체가 줄고 있다”며 “은행도 건전성을 들여다보며 대출해야 할 것”이라며 속도조절을 강조했다.

 

대출 연체가 은행 순익을 서서히 갉아먹는 요소라면, 구조조정은 뭉텅이로 잘라먹는다. 은행권이 구조조정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는 4월부터 본궤도에 오르는 건설업, 조선업, 해운업체와 44개 그룹사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 등을 고려할 때, 은행들의 대손 비용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에 단행된 112개 건설·조선사에 대한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만 은행권은 모두 1조2천억원의 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지난해 은행 전체 순익(7조9천억원)의 15.2%에 이르는 규모다. 홍헌표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수년 동안 은행들은 기업 대출을 해마다 20%씩 늘려왔다”며 “특히 건설업 등 조만간 본격화되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여신이 많은 탓에 은행들의 충당금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순익을 깎아먹는 요인은 넘쳐나지만, 이를 상쇄시킬 여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10조원의 충당금을 쌓고도 8조원의 이익을 낸 것은 금융위기 와중에서 시중금리가 폭등함에 따라 이자 부문에서 무려 34조원의 이익을 거둔 덕이었다. 올해는 이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예대마진에서 주로 발생하는 이자 수익이 시중금리 하락 때는 줄어들게 된다. 대출 상품의 70~80%가 시장금리에 연동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2분기까지 은행들의 순이자마진율(NIM)이 사상 최저 수준인 1% 중후반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출금리가 여전히 높다는 비난 여론이 있지만, 앞으론 은행권이 이런 여론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을 것”이라며 “가산금리 조정 등 적정 마진 확보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들이 앞으로 대출금리를 높이고 우량 고객 확보에만 주력하면서 서민과 중소기업들의 은행 이용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설명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한겨레  200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