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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극우 세력의 목표는 기득권의 영구화

 

서중석 교수(성균관대·사학과)에게 한국 근대 100년과 친일파에 대해 물었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의 대가로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과 < 역사비평 > 편집인을 맡고 있다.

강제 병합 100년을 맞았다.

반도는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교량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한국은 필수적으로 대일본 제국의 한 부분이어야 했다. 꼭 일본 것이어야만 하는 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타이완과 만주국에서 쓰는 정책과 달랐다. 겉으로는
내선일체를 떠들면서 지독한 차별정책과 동화정책을 폈다.

광복 후에도 '친일파'의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파시즘이 인류의 적이라면 거기에 봉사하고 참여한 세력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런 세력이 현대사의 중심 세력이 된 것은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 정부를 구성해 반일 정책을 펴는 것처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주 복잡한 생애를 산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천황(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혈서까지 써서 간신히 일본 군인이 됐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해 정신적 충격이 컸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1936년 2월26일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위 관료를 죽이고 국가 개조를 요구한 국수주의 신봉자들에게 심취해 있었다.


ⓒ시사IN 안희태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박정희 정권 때도 친일 논리가 작동했는가?

반공·반북·냉전 이데올로기 속에 묶어놓고 모든 것은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상당히 먹혀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의 근대화 논리는 일본 극우 세력과 맥이 닿아 있다. 친일파, 일본 야스쿠니파, 일본 교과서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에게는 한국이 항상 분단 상태로 있어야 한다. 일본 우익이 가진 이분적 세계관이 한국 극우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극우, 냉전 세력, 수구파들은 긴장과 전쟁 없이는 못 사는 세력이다.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반북·반러시아·반중국이 꼭 필요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외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 대통령 때는 평화적 화해와 통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는 북한이 쳐들어온다고 수없이 읊어댔다. 1984년에야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일부에서 과거 친일파 세력이 했던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최근 뉴라이트 등은 친일 행동이 자본주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고, 광복 후에 친일파가 이 나라를 건립했다는 의미를 들고 나왔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 수립한 날을 건국절로 하자고 한다. 역사의식이 짧아서 그렇다. 반공과 반북을 기초로 한 나름의 정체성을 이승만·박정희를 통해 찾으려 한다.

식민 지배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도 나온다.

제국주의자들의 일관된 상투적 수법이다.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해 산업화시켜야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로 강제 이주한 흑인 노예들에게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좋은 생활을 누린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도 노예를 바라지는 않는다.

우파의 목표는 무엇인가?

경제지상주의, 성장제일주의로 규정되는 박정희식 근대화주의가 이명박 정부를 출현시킨 것이다. 박정희식 사고가 먹혀들어 수구냉전 논리와 '나만 살면 된다'는 경제지상주의가 체질화됐다. 이성·양심·인권이 숨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극우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구화하는 게 목표다. 친일파는 일제가 영구화되기를 바랐고, 광복 후에는 미 군정이 영구화되기를 바랐고, 이승만 정부가 영구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부정선거가 영구화의 한 방법이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협력한 것도 유신을 통해 영구화할 방법이었다. 지금 정권도 권력을 영구화하려고 언론을 시녀처럼 통제하고 반대를 무리하게 무력화시킨다. 국민을 각성하지 못하게,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국민이 깨어나는 것처럼 무서운 게 없다. 진실과 정의처럼 무서운 게 없다.

시시IN  201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