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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서글픈 歷史

'도덕성보다 능력' 풍토가 대세 갈랐다

 

"무능이 하늘을 찌르다 보니 도덕이 땅에 떨어진 선거가 됐다."

 

19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7대 대통령선거에서 50% 가까운 승리를 기록한 데 대해 한 정치학자는 선거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도덕성보다는 능력,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시하는 '금전만능' 풍토가 이명박 시대의 개막을 일찌감치 예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권교체론과 경제결정론은 이번 대선의 승부를 판가름한 양대 요인이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국민들의 뼈에 사무친 선거 결과다. 이러한 반감이 대선후보의 미래지향적 가치에 투자해야 할 대선을 과거회고형 선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는 얘기다.

 

양당제가 정착된 선진국에서 10년을 주기로 정권을 주고받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된 후 보수(노태우·김영삼)와 개혁(김대중·노무현)이 정권을 주고받다가 보수세력이 다시 정권을 넘겨받을 차례가 됐다는 것이다.

 

같은 대학 김형준 교수도 "김대중이 당선된 97년 대선은 정권 심판과 함께 경제문제를 해결할 지도자를 뽑자는 민심이 결합된 결과가 나왔는데, 그로부터 10년 만의 대선에서도 '한 번 바꿔보자'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다"고 평했다.

 

정권교체론과 함께 민생경제를 대선의 핵심 이슈로 밀어붙인 한나라당의 전략도 주효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내걸었던 '평화'는 장기적·추상적인 느낌이었던 반면, 이명박 후보의 '경제' 슬로건이 유권자들의 가슴에 훨씬 와 닿았다는 얘기다.

 

서울시장 퇴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이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와 '7% 성장, 4만 달러 소득, 7대 경제강국'이라는 이른바 '747 비전'으로 경제 이슈를 선점했다. 이는 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에서도 '이명박 대세론'을 떠받쳤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급급한 나머지 외연 확대에 실패했지만, 실용주의 이미지의 이 후보는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으로 한국판 보수의 '제3의 길' 시대가 열린 게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

 

직선 자치단체장 출신의 첫 대통령으로서 이 후보가 최대 표밭인 서울의 민심을 잡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후보는 청계천과 버스전용차선으로 대표되는 시장 시절의 업적을 내세워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는데, 여야의 균형이 팽팽했던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이 생겼다.

 

수도권과 영남의 유권자들이 함께 뭉쳐 이 후보를 지지하는 한 '이명박 대세론'은 꺾일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후보는 전체 연령층에서 비교적 고른 득표를 올렸는데, 이 또한 역대 대선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2002년 대선만 해도 20~30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50대 이상 유권자들은 이회창 후보를 선택하는 '세대 투표' 현상이 심화됐다.

 

김형준 교수는 "20대는 이념을 버리고 실리 투표를 했고, 50대 이상은 진보 정권에 저항하는 선택을 했다. 여기에 40대가 일찌감치 돌아서며 이 후보가 압승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이번 대선에서 단일 공약으로는 가장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경제성과 환경영향 등으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당내 경선에서 불붙었던 대운하 논란은 하반기 들어 BBK 등 네거티브 소재에 묻혀버렸다. 대운하 공약이 운하가 통과할 내륙 예정지 주민들의 개발 기대 심리를 자극해 이 후보가 오히려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 '빅3'로 거론되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3월 19일)도 당으로서는 손실이었지만, 이 당선자에게는 경선 과정에서 호재로 작용했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이후 당내 소장파들이 대거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고, 이로써 후보의 당내 기반을 확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 및 본선에서 이 후보에 타격을 줄 수 있었던 네거티브 소재들은 아프간 한국인 인질사태와 신정아-변양균 스캔들, 남북 정상회담,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등으로 희석됐다.

 

이를 놓고 "개신교 신자인 이 후보를 부처님(신정아 사건)과 알라 신(아프간 인질 사태)이 도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정도였다.


 

2007년 12월 19일 (수) 20:38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