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26㎡ '타코' 가게 건너 미국 기업 '타코벨' 문 열어…고객 빼앗겨 매출 30%↓
영세음식점 보호장치 없어 FTA땐 SSM 규제도 헛일
서울 신촌 명물거리엔 멕시코 길거리음식 '타코'를 파는 가게 두 곳이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세계 최대 멕시코음식 패스트푸드점인 '타코벨'이 하필이면 7년째 신촌에 터잡아온 '초이스타코' 바로 맞은편에 지난달 문을 연 탓이다. 타코벨은 피자헛과 케이에프시(KFC)로 유명한 미국계 다국적기업 '얌브랜드'의 자회사로, 미국에만 5600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26.4㎡짜리 작은 가게인 초이스타코와는 견줄 수조차 없는 존재다.
지난 3일 저녁 초이스타코 사장인 최우진(54)씨는 얇은 토르티야(밀 전병) 위에 다진 소고기와 야채를 올리는 틈틈이 씁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가게 창문 너머로는 타코벨 매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번 손님 음식 나왔습니다'라는 타코벨 아르바이트 직원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최씨는 "몇 년 전부터 타코벨이 이곳에 시장조사를 나왔었다"며 "7년째 공들여 쌓아놓은 상권을 다국적기업이 코앞에서 가로채간 꼴"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타코벨이 개장한 뒤로 이 가게의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매일 12시간씩 가게문을 여는데도 매출은 20~30%가량 줄었다. 반면 타코벨은 하루 1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진출한 타코벨은 서울 시내 기존 매장 4곳 외에 추가로 3곳을 연내 개점할 계획이다. 타코벨코리아 관계자는 "신촌 매장은 회사 소유건물이라 그 자리에 개업한 것뿐, (초이스타코를) 의식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천리안 개발팀장을 지내고 유망 벤처기업을 세웠던 사업가 출신이다. 2003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회사가 망하고 큰 빚을 진 뒤, 그는 미국 출장 때마다 즐겨먹던 타코를 떠올렸다. 멕시코까지 가서 타코 만드는 비법을 배워온 최씨는 분당 노점상에서 시작해 신촌에 가게를 열었고, 국내에 생소했던 타코는 어느새 지역 명물이 됐다. 그런데 타코벨의 등장으로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최씨처럼 음식점을 하는 중소상인을 보호해줄 제도적인 울타리는 없다. 동네 슈퍼마켓을 위협하는 국내 대기업들에 대해선 중소기업청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기업형 슈퍼마켓(SSM) 일정 거리 이내 입점 금지'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제조업 분야에선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이용해 '대기업은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해볼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타코벨과 같은 다국적기업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다. 한국 정부가 '제한 없는 완전시장 개방'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씨처럼 다국적기업한테 속수무책으로 상권을 빼앗기는 중소상인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국내 대기업들을 상대로 적용돼왔던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방안 등도 자유무역협정 규정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무용지물이 될 판이다. 김경배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회장은 "국내 대기업들이 중소업종을 짓밟는 것도 모자라, 정부가 사전 준비·대책도 없이 다국적기업들한테 몽땅 골목상권을 내주려 한다"고 비판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국가간에 조정해야 할 권한을 개별 상인과 기업한테 넘겨버린 탓"이라며 "한국 정부가 '경제적 수요 심사'를 통해 중소상인을 보호할 업종이 무엇인지를 따지고 생존권 침해를 막는 내용을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포함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20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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