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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윤중식 화백 "100살이 무슨 상관…순간이 중요하지"

 

개인전 여는 국내 최고령 100세 윤중식 화백
박수근·이중섭·김환기와 동시대 활약
성북구립미술관서 12년만에 개인전
요즘도 느지막이 일어나 오후에 작업

 

"예술가에게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작품이 가장 중요하지요."

노 화가에게 나이는 시쳇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한국 화단에선 70세가 넘어서면 대부분 현역에서 물러나거나 활동이 뜸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올해 100세를 맞이했는데도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예전 같진 않지만 여전히 붓과 캔버스를 가까이하며, 신작을 발표하는 개인전을 준비했다.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 국내 첫 상수(上壽ㆍ100세)전을 여는 윤중식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100세 생존 작가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도 드문 데다 개인전까지 여는 건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명한 화가로는 피카소가 92세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작품활동을 했다.

성북동 자택에 전화를 걸었더니 장남 윤대경 씨(65)가 대신 받았다. 화백은 외부인 방문이나 화실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화백에 대한 인터뷰는 대경 씨를 통해 질문하고, 한참 뒤에 답을 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작품이 오랜만에 밖에 나가니 기분이 묘하다고 하시네요. 작가는 나이보다 작품으로 말해야 하신다면서요."

화단에서 스스로 엄격하고 깐깐하기로 유명한 그의 성품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들의 전언에 따르면 작가는 청력이 약해졌을 뿐, 여전히 정정하다고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한 뒤 오후 내내 작업에 몰두할 때가 많다고도 했다. 요새는 아무래도 유화 대작은 힘에 부쳐 대신 `과슈`(불투명 수채) 소품을 주로 그린다.

특별하게 외출하는 일은 없지만 가끔 인사동에 미술 재료를 사러 발걸음을 옮긴다.

"당신에게 남아있는 순간 순간이 소중하고 애틋하시답니다. 작품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시다면서."(대경 씨)

그는 1913년 평양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 가운데 여섯째다. 어린 시절 미술은 물론이고 음악과 체육 가릴 것 없이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평양)숭실중학교 시절에는 수영선수로 활약할 만큼 운동광이었다.

1935년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현재 무사시노미술대학)에 입학해 서양화를 익혔다. 그래서 그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서양화 2세대로 분류된다. 고희동 김관호 등 1세대가 서양 유화 기법을 받아들였다면 2세대 작가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남겼다.

 

              

 국내 첫 상수(上壽ㆍ100세)전을 여는 윤중식

화백이 최근 서울 성북동 화실에서 풍경화에

덧칠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성북구립미술관>

                                                                      

 

"석양" (116.7×90.9㎝)

화업 80여 년 동안 그는 유화 수백 점을 그렸다.

따뜻한 색감이 묻어나는 정물과 풍경이 그의 트

레이드마크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윤중식 화백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표현적인 묘사가 강하고 재야보다는 국전을 중심으로 한 정통파로 분류된다"고 평했다. 풍경화는 빛의 묘사가 절묘하기로 정평나 있다. 한 미술 애호가는 "윤중식 화백은 화면 분할 방법이 독창적"이라며 "색감이 굉장히 명징하고 고급스럽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이북 실향민이라는 점이다. 그의 화폭에는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가 절절이 묻어난다.

저녁노을과 비둘기 돛단배 시골풍경은 그가 어렸을 때 보고 자랐던 풍경이자 한평생 가슴에 묻은 정경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작년에 그린 석 점을 포함해 미공개작이 40여 점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 만에 여는 전시다. 총출품작은 70여 점. 생애 마지막 개인전이 될 수 있기에 삶의 발자취가 담긴 드로잉과 사진, 친필 자료도 공개된다.

고향을 두고 온 그에게 성북동은 `제2 고향`이다. 대경 씨를 통해 몇 마디 더 물었다. "1963년 터를 잡았으니 50년간 살았죠. 2010년 성북구립미술관 개관전에도 참여했고. 성북동에서 상수전을 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성북동 정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그림을 그린다. 화실에는 클래식 음악이 항상 흘러 넘친다. "성북동에 재개발 움직임이 있어 걱정됩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답답할 테니…."

전시를 기획한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윤 화백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산증인"이라며 "서정성과 향토성 위주로만 평가받았던 그의 작품이 이번에 제대로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전시는 다음달 3일부터 6월 3일까지. 관람료 1000~2000원. (02)6925-5011

 

 

매일경제  201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