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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무대에선 일흔도 청춘이다

70 ~ 80대 원로배우들 봄 연극무대서 열연…관객 기립박수
둘이 합쳐 159세 백성희·박근형 `3월의 눈`,

이순재·전무송 `아버지`, 오현경 `봄날` 주연

 

 

80분짜리 연극이 끝나면 매번 백성희장민호극장에는 정적이 흐른다. 18일까지 공연되는 `3월의 눈`을 책임지는 백성희ㆍ박근형 두 배우 나이를 합치면 159세. 노배우들의 먹먹한 연기에 객석은 한참 기립박수를 보낸다. 혼신을 다한 연기에 보내는 아낌없는 갈채다.


올봄 연극 무대에선 일흔도 청춘이다. 이순재(76), 전무송(71), 오현경(76), 박근형(72), 백성희(87), 손숙(67) 등이 당당히 주연을 맡았다. `일흔 만세`를 외치는 이들은 오히려 관객이다. 노배우들이 젊은 배우에게서는 보기 힘든 연륜을 무대 위에서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3월의 눈`은 지난해 초연 당시 연극계 최고령 배우 백성희와 장민호(88)가 호흡을 맞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전석 매진에 보조석까지 놓을 정도로 객석이 들어찼다. 본인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아흔을 앞둔 두 배우는 일상생활 같은 담담한 연기로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냈다.

건강이 나빠져 아쉽게 하차한 장민호를 대신해 올해엔 박근형이 무대에 서고 있다. 그는 백성희와는 60년대 국립극단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다. `만선`(1964) `갈매기`(1966) 등에 출연하며 국립극단을 이끌었던 두 배우가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박근형은 백성희를 평소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이. 15살 터울을 뛰어넘어 이번엔 부부를 연기하고 있다.

16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는 `봄날`이 공연된다. `오현경의 봄날`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노배우 연기는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극작가 이강백 대표작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가난했던 60년대 다섯 형제를 키우는 자린고비 아버지. "야 이 녀석들아, 해가 중천인데 벌써 기어 들어와?"라며 꾸중하는 꼬장꼬장한 모습은 암투병을 겪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이롭다.

오는 4월 부산과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아버지`를 책임지는 배우도 이순재와 전무송이다. 미국 작가 아서 밀러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적으로 번안한 이 작품으로 이순재는 올해 초 `돈키호테`에 이어 다시 연극 무대에 선다. 이순재는 1979년 첫 출연한 뒤 이 작품과 세 번째, 전무송은 네 번째 인연을 맺는다.

23일부터 충무아트홀 블루에서 공연되는 `아내들의 외출`의 주연은 손숙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올해 신작 연극만 3편을 할 정도로 연극계에서는 가장 바쁜 배우다. 지난해 `엄마를 부탁해` `셜리 발렌타인`에 이어 이번에도 어김없는 엄마 배역.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친 세 여인이 외국의 낯선 공항대합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에서 이 땅의 엄마들에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지" 되묻는다.

이 같은 원로 배우들의 맹활약은 최근 부쩍 심해진 중견배우 가뭄을 해결해주고 있다. 최근 방송시장이 커지면서 40ㆍ50대 대학로 중견배우들은 무대보다 TV사극에서 조연급으로 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그동안 연극계는 젊은 배우와 젊은 관객 위주라서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면서 "연극에 잔뼈가 굵고 든든한 70대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관객층이 다양해졌고, 젊은 배우와 원로 배우들 간 신구 조화도 잘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공연 연출가는 "수십 년째 연극 무대에 서온 원로 배우들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마이크 없이 대극장에서도 연기를 할 만큼 발성이 대단하다. 연기력은 물론이고 탄탄한 발성에 있어서는 젊은 배우들이 따라가질 못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201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