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맞은 경기상고 36회 동기 102명…의기투합 책 펴내
학교 후문 청와대와 맞닿아 4·19와 5·16 경험…자식·손자들에게 전할 인생선배 이야기 담아
머리에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신사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1960년 경기상고에 입학한 제36회 동기들이다. 지난 5월 졸업 50주년, 칠순 모임을 겸해 모임을 가진 이들 동기생 102명은 자식들에게, 손자들에게, 후배들에게 자신들의 인생 경험담을 들려주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이달 초 책을 펴냈다. 제목은 `친구야 고맙다. 내곁에 있어줘서`다.
우의제 전 하이닉스 대표, 정봉섭 한국대학농구연맹 고문, 박찬원 전 코리아나화장품 대표, 김희남 전 연세의료원 이비인후과 병원장, 장배현 전 육군항공사령관, 이웅호 유창기계 회장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졸업 50년 만에 동기모임을 주도했다는 윤정세 MPR 대표는 "상고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한국 현대사를 만들어 온 주역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경기상고는 실제로 경무대(현 청와대) 후문과 맞닿아 있다. 이들 36회 동기생들이 입학했던 1960년은 4ㆍ19 혁명, 이듬해인 61년에는 5ㆍ16 군사혁명이 발생해 학교 인근에 매일 전차들이 출동했고 시위와 혼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들은 "1963년 310명이 졸업했는데 102명이나 동기모임 책을 집필하는 데 참여했다"며 스스로 놀라워했다. 이들은 "10대 시절 연필로 글을 썼는데. 이제 나이 70이 돼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와 이메일을 통해 글을 쓰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보며 우리도 참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의제 전 하이닉스 대표는 "나이가 들면서 힘을 빼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더 부드럽게 보고, 골프를 칠 때나 양치질을 할 때도 힘을 빼려고 한다"는 내용의 에세이를 게재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사진촬영에 푹 빠져 있다는 박찬원 전 코리아나화장품 대표는 "사진 촬영 가는 날이면 항상 잠을 설친다"며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자연과 사진촬영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다. 80년대 중앙대 우승신화를 이끌었던 정봉섭 대학농구연맹 고문은 "등록금이 없어서 막막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정년 퇴임 때 전국의 농구스타들이 다 모여 축하해 줬다.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 동기생은 "우리 시대의 구호는 안되면 되게 하라였다. 무에서 유를 개척한 세대나 마찬가지"며 "이런 개척 정신으로 나라도 일으키고 가정도 일으켰다. 젊은 세대도 더 패기를 지니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1953년 한국의 1인당 GDP는 142달러였는데 이들이 60세 전후 은퇴한 2003년에는 1인당 GDP가 2만5000달러를 기록했다.
윤정세 대표는 "나이 70, 졸업 50주년을 맞아 건강, 우정, 향기로운 내일을 우리 동기 모임의 슬로건으로 정했다"며 "이미 세상을 떠난 동기들도 40~50명 되지만 끝까지 우정을 나누며 후배들,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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