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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김밥할머니 이름 넣으면 비국제적인가요?

 

 

 
▲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 전경
ⓒ2006 충남대 홈페이지
"재물은 만인이 공유할 때 빛이 난다"

지난 1990년 11월 김밥 행상으로 평생 동안 힘겹게 모은 50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현금 1억원 등 전재산을 충남대에 기증한 이복순(법명 정심화) 할머니가 남긴 명언입니다.

이 할머니는 191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39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대전에서 김밥 행상을 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평상시 검정 고무신에 통바지 차림으로 살았을 정도로 자신을 위한 돈쓰기에는 인색했다고 합니다.

남을 위해 전 재산을 내놓은 이 할머니의 행적은 '아름다운 손'으로 불리기에 충분했습니다. 함께 나누는 삶을 몸소 실천한 이 할머니의 고귀한 결단은 척박한 기부문화를 돌이키게 하는 사회적 자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할머니의 '고귀한 진심'이 기부를 받은 국립 충남대를 움직이기에도 부족한 것이였을까요?

충남대는 오는 3월 1일부터 이 할머니의 법명을 따 붙인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의 이름을 '충남대 국제문화회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할머니의 법명을 빼기로 한 것입니다.

충남대 '국제문화회관'은 김밥 할머니의 기부로 지난 1993년 착공됐습니다. 때문에 충남대는 당초 건물 이름을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으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충남대는 지난 2000년 7월 건물을 완공하자 할머니의 법명인 '정심화'란 이름을 빼고 '국제문화회관'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기증받은 부동산이 팔리지 않는 등으로 인해 할머니의 기부금은 일부만 투입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충남대는 2002년 초경에서야 여론에 떠밀려 건물명을 다시 '정심화 국제문화회관'으로 바꿨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이 할머니의 흉상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충남대의 때늦은 처사는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밥 할머니 이름 빼야 국제적?... 충남대 처사 항의하는 글 봇물

그랬던 충남대가 이번에 또다시 할머니의 법명을 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유인 즉 "국제교류원과 언어교육원 건물이 새로 건립되면서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게 돼 이에 걸맞는 특색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명칭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물이 지어진 사정을 잘 아는 지역민들은 건물 이름에서 할머니의 법명을 빼야만 '국제적'인 것인지에 대해 아리송해 하기만 합니다. '김밥 할머니 문화회관'이라고 하면 더 특색있고 국제적일 것 같다는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건물 명칭을 바꾸기로 한 충남대 방침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www.cnu.ac.kr)에는 이를 질타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을 충남대 학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기부자를 이렇게 홀대하는데 누가 과연 학교에 기부를 할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왜 대학 스스로 소속 학생까지도 부끄럽게 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은 것일까요?

이와 관련, 대학 내부에서조차 '새 건물을 지으면서 한 제약회사 회장이 거액을 기증하자 대학 측이 김밥 할머니 이름만을 붙이기 곤란하다고 판단해 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대학측은 "국제문화회관 내 가장 큰 홀인 대강당의 이름은 그대로 '정심화홀'을 유지할 것"이라며 '기부자 흔적 지우기'는 아니다"라고 반박해 오다 최근에는 "명칭 변경 여부를 재논의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위해 '아름다운 기부'을 한 김밥 할머니의 이름을 사람들 가슴 속에 아로 새기고 기억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대학 측이 김밥 할머니의 진심을 건물 이름에서부터 기억하고 간직하기를 바래봅니다.

 

 

 

 

ⓒ 2006 오마이뉴스,심규상 기자   200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