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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 부자동네’…그곳을 알고 싶다

 

첨단장비 갖춘 그들만의 ‘철옹성’

돈 있어도 들어오기 힘든 강북 부촌들…학벌, 직업 등 1%만
강남부촌, 실용성·접근성 자랑하며 신흥부촌으로 부상

 

시대를 막론하고 부촌은 존재한다. 땅값과 집값에 따라, 동네 이름에 따라 엇비슷한 재력과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부자동네라고 하면 서울 강남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물론 강남의 집값이 최상위권에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부자’는 강북에 산다. 성북동, 한남동, 이태원동 등 전통적으로 부자들이 모여 살던 동네가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전통부촌은 남다른 폐쇄성과 고립성을 자랑하며 다른 동네와 선을 확실히 긋고 있다. 이에 반해 비교적 늦게 부촌으로 성장한 강남의 부자동네들은 좀 더 실용적이고 편리한 주거환경으로 집값을 드높이고 있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재벌가 사모님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대는 것으로 전화통화를 시작한다. “여보세요”가 아닌 “성북동입니다”, “평창동입니다” 등이 그것. 이 같은 인사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동네이름만 대도 알만한 부자동네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1%를 자처하는 최상위권 부유층이 사는 동네는 어디일까. 부자동네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강남보다는 한강을 발밑에 둔 강북에 전통적인 부촌이 즐비하다. 성북구에 위치한 성북동, 종로구에 있는 평창동, 용산구에 자리한 한남동, 이태원동 등이 대표적인 부자동네로 꼽힌다.

 

높은 담장과 대문, 더 높은 자부심

 

이들 부촌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폐쇄성이다. ‘담장 허물기’로 이웃 간에 정을 쌓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지금도 이곳들은 철옹성같이 높은 담벼락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숨겨놓고 있다. 골목 곳곳에 설치된 CCTV와 보안장비는 타 지역 주민들이 접근하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 대부분의 부촌들은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찾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걸어 올라갔다간 숨이 차오를 만큼 비탈진 곳에 있는 이들 동네는 ‘차 없이는 올 생각도 하지 말아라’고 말하는 듯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부촌들은 동네주민이 아니라면 찾아오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졌다. 서울 청담동에 늘어선 고급카페들이 부유층들의 전유물로 입소문을 탄 이유 중 하나가 ‘대중교통으로는 오기 힘든 곳’이라는 것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부촌 중 명실 공히 최고의 집값을 자랑하는 곳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그중에서도 하얏트호텔 아래 위치한 이태원 외인주택이 전통적인 부촌으로 이름나 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지어진 저택들은 높은 축대위에 지어져 있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돌아다니는 행인을 찾아보기도 힘든 이 동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곳곳에 위치한 CCTV뿐이다.

 

발표된 집값도 단연 최고다. 국토해양부가 공개한 단독주택 공시가격에 따르면 이태원동에 있는 단독주택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공시가격은 무려 95억9000만원.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집을 3만채 이상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 동네 집주인들은 대부분 기업가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국회의원, 검사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주민구성은 주민들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연은 아니다. 집을 살 돈이 있다고 해서 이 동네의 주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업, 학벌, 집안 등에 결격사유가 없어야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또 집을 파는 사람도 거의 없어 현재 이 동네 주민들의 구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에 위치한 한남동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부촌이다. 특히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그룹 총수는 물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부호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남동에 갑부들이 몰려든 이유 중 하나는 풍수지리상 명당이란 점이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굽어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인 한남동은 풍수지리학상 재물이 들어오는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부촌 대열에 낀 것은 1960년대 이후다. 군사정권 시절 군 출신 엘리트들이 과거 육군본부가 있던 용산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권력 실세들이 터를 잡았다. 그후 1970년대에는 재벌과 부유층이 이곳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재벌 1세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풍수지리가 부촌 결정…기업가 등 유명인 즐비

 

한남동 역시 고립성과 폐쇄성으로 대표된다. 아무리 오랫동안 한남동에 살아도 주변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부동산 중개업소도 대지나 건평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이태원동과 마찬가지로 매물이 거의 없고 설사 매물이 나왔다 해도 직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수십년간 이곳을 지켰던 단국대학교가 이전하면서 한남동은 한층 더 부자동네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단국대 부지가 ‘학교용지’에서 해제되면서 고급빌라와 고급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부촌 대열에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동네는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성북동은 삼청터널에서 시작해 삼선교로 이어지는 언덕배기에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모여 있다.

 

이곳 역시 재벌 총수 및 중견 기업인, 전직 고위 관료 등이 모여 있다. 1970년대 부자 기업인들이 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와 가깝고 풍수지리학적으로도 길지인 성북동으로 오면서 부촌의 상징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학군’ 역시 성북동을 부촌으로 만드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성북동은 해방 이후 명문 고등학교로 이름을 날렸던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가 학군에 포함되어 있다. 이 학교 출신 중 정·재계를 움켜 쥔 인사들이 성북동을 지키면서 부촌으로 이름을 날린 것.

 

이후 성락원마을, 꿩의 바다마을, 삼청주택단지, 학의 바다마을 등의 이름을 가진 고급 주택단지가 속속 형성되면서 부자동네의 틀을 갖췄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재벌 및 중견 기업인은 대략 1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상당수 현대가 재벌이 성북동에 살고 있다. 지난 2006년 결혼한 현대가 정대선 씨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도 지난해 7월 귀국해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성북동 역시 여느 부촌과 마찬가지로 주민이동이 적다. 이곳은 40여년 전부터 거주하던 부자들이 눌러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다른 동네로 이전을 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주민이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

 

성북동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한 유명인이 큰돈을 번 후 성북동에 주택을 구입하려 했으나 동네이미지와 수준의 하락을 염려한 주민들이 합심해 그 주택을 샀다는 얘기다.

 

종로구에 있는 평창동도 오랫동안 부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창동이 다른 부촌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문화부촌’이라는 것.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초창기 주로 정치인 등의 권력가가 모여 살던 평창동에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부유층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삼청동에서 평창동까지 이어지는 문화벨트가 형성되어 각종 갤러리와 미술관이 밀집해 고급예술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남산과 북한산을 따라 부유층을 품고 있는 강북의 부촌은 수십 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특성을 고스란히 안은 채 고고하게 그들만의 성을 지키고 있다.

 

이에 반해 강남의 부자동네는 비교적 늦게 부촌의 대열에 합류했다. 강남의 부촌이 강북의 부촌과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실용성과 접근성 등을 갖췄다는 것이다. 강북의 부촌이 풍수지리적인 이점에 의해 부유층이 몰려들었고 폐쇄성으로 자신들만의 성을 견고하게 지킨 것과는 다른 점이다.

 

 

뒤늦게 개발된 강남 계획도시의 편리함 가져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청와대와 각종 관공서 등이 자리하며 이미 도시 틀을 갖췄던 종로구, 중구 등과는 달리 당시의 강남은 대부분이 논 또는 밭이었다.

 

그러던 강남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정부정책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하던 땅값은 올림픽을 전후해 급격히 상승했다. 때문에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속칭 ‘졸부’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풍문도 있다.

 

또 경기고, 서울고 등 명문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한 것도 부자들의 이동을 부추겼다. 어느 시대에나 식을 줄 몰랐던 우리의 교육열은 부촌을 생성시키는 데도 한몫을 단단히 한 것.

 

대표적인 것이 교육부촌의 대명사 대치동이다. 1980년대 도시계획에 의해 대단지 아파트인 은마, 청실, 우성, 미도아파트 등이 들어설 때만 해도 대치동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아파트촌에 불과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시행된 신도시 고교평준화로 강남학군이 재부상하면서 부촌의 대열에 올랐다. 또 ‘사교육 1번지’로 알려진 대치동의 유명한 학원가는 입시생을 둔 부모라면 누구든 군침을 흘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대의 흐름과 가치의 변화에 따라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하는 대한민국 1% 부촌들. ‘사는 곳이 곧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광고카피가 먹히는 한 부자동네의 흥망성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스포츠 서울  2009.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