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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불법’으로 점철된 방송장악, 그 후

 

최영묵|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방송문화진흥회는 지난 10일 MBC 엄기영 사장의 사표를 반려하고 편성·제작·보도·경영본부장의 사표는 수리했다. MBC 노조는 더 이상 엄 사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촛불에 덴 MB정권의 인사를 통한 공공서비스 방송장악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KBS의 경우 먼 길을 돌아왔다. 지난해 8월 정연주 사장이 ‘불법’ 해임된 후 이병순 사장이 취임했다. 이 사장은 1년의 재임기간 KBS의 공공성과 신뢰도를 포기하면서 정권에 충성했으나 연임에는 실패했다. 예상대로 지난달 24일 ‘MB맨’ 김인규씨가 KBS 사장이 되었다. 낙하산 저지를 위한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는 부결되고, KBS 기자와 PD 600여명은 노조 탈퇴를 선언했다.

무리한 인사조치 줄줄이 패소

YTN은 속전속결 전략이었다. 낙하산 사장으로 조기 투입된 구본홍씨는 취임 1년여 만인 지난 8월3일 전격 사퇴했다. YTN 노조가 무려 1년 이상 풍찬노숙하면서 불퇴전의 의지로 싸운 결과였다. 후임 사장으로 내부의 배석규 전무가 임명되었다. 인사조치에 합리성이 없고 ‘돌발영상’ 같은 간판 프로그램을 문제삼는 등 이병순씨와 닮은 꼴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MBC와 YTN의 경우 ‘거세된’ 내부인 사장을 통한 저널리즘 기능 무력화 시도라고 할 만하다. KBS에는 실세 중의 실세를 투입하여 내부 저항의 싹을 잘라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MB정권의 공공서비스 방송장악 시도는 일단 법원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우선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자. 지난 10월29일 헌재는 한나라당이 방송법 등을 날치기 처리한 것에 대해 토론 생략, 표결의 공정성 결여,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등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야당 의원 등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MB정권은 방송사 장악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한 인사 조치에 대해서도 줄줄이 패소하고 있다. 먼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2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무효 청구소송에서 “정 사장을 해임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해 남용한 것이므로 해임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적자경영 등 해고사유가 부당할 뿐만 아니라 KBS 사장의 임기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법원도 지난달 17일 정연주 사장 해임 당시 첫 희생자였던 동의대 신태섭 교수에 대해 해임 무효를 확정했다.

권력의 방송장악은 무덤 파는 일

정부는 YTN 해직기자들과의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지난달 13일 법원은 “(YTN 노조의 구본홍 사장 취임 반대 운동은) 대표이사가 특정 후보를 위해 활동했던 경력이 있어, YTN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공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점을 들어 해고무효 판결을 내렸다.

공공서비스 방송은 시민의 정치참여와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의제 설정, 공공 이슈와 관련한 열린 토론공간 제공, 시민 문화발전을 위한 건전한 오락 제공, 국민 모두를 위한 보편 서비스 활성화에 그 존재 이유가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작동을 위한 핵심 영역이자 국가의 ‘조기경보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이 불법과 탈법으로 이를 무력화하거나 해체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권력의 방송 장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방송인의 내부 검열 내면화다. 소위 알아서 기는 기회주의 저널리즘이 만연하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언론노조는 지난 11일 외부압력 배제, 진실보도, 시민사회 연대를 중심으로 ‘비타협적 보도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공서비스 방송 수호를 위한 방송인과 언론노조, 시민사회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최영묵|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경향신문  200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