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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누가 국회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사설]

 

2008년 12월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박진위원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은 위원회 회의실에 야당 몰래 들어가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날치기로 상정했다. 미국 쪽에서 비준할 의사가 없어 이명박 정부가 다급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지만, 야당과 싸우는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무리한 도발을 했다. 이에 야당은 해머를 동원, 문을 부수는 슬픈 볼거리를 제공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제 마치 그날을 기념이라도 하듯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을 점거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를 막는다며 달려와 몸싸움과 승강이를 했다.

난장판 국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견을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태도이다. 힘의 동원은 협상과 설득, 타협할 능력이 없는 권력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문제는 힘이란 일단 사용하면 복잡한 설득과 대화 과정을 생략한 그 단순함과 편리함 때문에 자꾸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힘은 마약과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민의 반대와 온갖 문제 제기에 아랑곳없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내년 예산안의 최우선 순위를 4대강 사업에 두고 예결위 계수조정 소위에서 4대강 예산을 관철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의 전단계라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보를 낮추고 준설량을 줄이자는 여야 중진의 절충안을 여당이 거절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담을 하자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제의를 청와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다소 놀랍다.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반영된 4대강 예산인데 대통령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지 안타깝다.

그런데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소위 구성에 참여하면, 삭감할 부분이 있으면 삭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권당으로서 자율적인 정책 결정 능력을 보여주든가, 대통령의 거수기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모를까 젖먹이도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여당은 예산안의 1%에 매달리면 되느냐고 야당을 질책하는데 여당에 묻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결단해야 풀린다. 반대가 있으니 내년으로 미루겠다든지, 안 대표가 제의한 양당 원내대표·예결위 간사 4인 논의에 전권을 맡기든지 해야 한다. 물론 국회는 대화·타협의 장이 아닌, 대통령 지시 집행기관이라고 생각하거나 국회가 난장판이 되어도 상관없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경향신문  200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