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긴급진단]
연구소·금융권 "버블 붕괴 대책 세워야"
업계 전문가 "가격 조정일 뿐 '급락' 없을 것"
오리무중(五里霧中). 최근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을 한 마디로 압축한 단어다. 마치 깊은 안개 속을 걷는 듯 싶다는 게 최근 부동산시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 시각이다.
집값 버블 문제를 둘러싸고 각계각층의 의견이 분분해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수도권·지방 가릴 것 없이 준공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불 꺼진 아파트'가 늘고 있다.
또 버블 세븐으로 불리며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분당과 용인 등에서는 시가보다 1억 원 이상 싸게 급매물이 나와도 팔리질 않고 있다.
뿐만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대형 호재로 통했을 법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안전진단 통과, 용적률 상향 조정 등의 소식에도 시장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버블은 당시엔 알 수 없고 사실 여부는 역사가 판단해 줄 일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심심찮게 '버블' 논란이 재점화되는 건 부동산(집)을 향한 우리 국민의 애정과 집착이 그만큼 남다르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 올 것인가 끝없는 논란
하나금융경영연구소를 비롯해 산은경제연구소, 신한금융지주,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연구소와 금융권은 집값 버블 붕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10년 현재 35~55세는 총인구에서 35.3%(1727만 명)를 차지하고 있으나 2011년부터 점차 감소할 것이고, 최대 주택 수요층이 감소해 주택 가격도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주택 가격이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급락한 데 비해 우리나라의 주택 가격은 뚜렷한 조정을 겪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지역의 실질주택가격지수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8년 상반기에 비해 1.37배 가량 축소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인 만큼 향후 금리 인상 시 하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산은경제연구소는 한국의 PIR(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은 2006년 이후 3년 간 6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인 2006년 4.03에서 2008년 3.55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PIR도 3.89에서 3.72로 소폭 하락했다. PIR이 높을수록 가계소득으로 집을 사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경우 2008년 PIR이 12.64를 기록, 미국의 주요 도시인 뉴욕 7.22, 샌프란시스코 9.09보다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산은경제연구소는 또 주택 가격이 무섭게 치솟으면서 HAI(주택구입능력지수)가 최근 하락 추세에 접어든 점도 꼬집었다.
HAI는 월 소득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 지표로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원리금 상환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HAI는 작년 3분기 기준 61.7로 5년 전에 비해 약 20% 감소한 상태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이들 연구소의 주장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산은경제연구소에서 '40가구 이상'인 단지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가격을 기준으로 PIR을 산정했으나 이를 '전국평균 주택가격'에 따른 값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산은경제연구소가 물가 대비 집값 상승 수준을 판단하면서 비교 대상의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지가, 미국은 주택 가격, 한국은 아파트 가격 기준으로 비교한 자료를 근거로 했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또 아파트가 아닌 주택 가격 기준으로 분석할 경우 1987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의 소비자물가는 178% 오른 반면 전국 주택 가격은 141% 상승해 주택 가격이 물가 상승 수준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 역시 "PIR은 미국 주요 도시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PIR이 버블 정도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라는 국토부의 의견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비슷한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한금융지주가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세미나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는 일단 주택시장의 방향성을 지금부터 하향 일변도로 예측했다.
주택 주 수요층인 35~54세 인구가 2011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데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5~1963년생들의 은퇴가 올해부터 시작된 것도 집값 하락 압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뤄진 기준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에 따라 급격히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이토록 주택시장 위기를 알리는 데 사명을 건 민간연구소들이 정부에 전하고픈 요구는 무엇일까.
현대경제연구원 임상수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고, 버블 붕괴가 급진전될 경우 가격 급락 가능성이 있어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점진적으로 하락시키기 위해 지방 인구의 수도권 유입을 최소화하고 수도권 노령 인구를 지방으로 보내기 위한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 "조정 국면 확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집값 대세 하락에는 어느 정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의 사태로까지 확대되지 않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시장이 안정화됐고 인구감소 우려도 당장 진행되는 이슈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부동산114 김규정 콘텐츠본부장은 "일본 버블 붕괴와 비교하기에는 소득 대비 가격수준, 최근 지수 변동 상황, 도심 수도권 수요 집중 현상, 대출 규모 등이 다르며, 가격 붕괴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다재테크 오은석 대표도 "현재의 상황은 작년 재건축 규제 완화와 실물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일시적으로 상승했던 부분에 대한 가격조정으로 보이며, 버블붕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서울 및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여전히 두터운 대기 수요층이 있다는 점, 풍부한 유동성이 시장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일시 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으나 폭락이나 붕괴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집값 추세에 따라 일희일비가 좌우되는 건설업계 관계자들 또한 시장 전문가와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GS건설 임충희 주택사업본부장은 "부동산은 국지적 수요에 따라 가격이 하락하거나 상승하는 특성이 있으며, 금융 위기 후 실질적인 가계 소득의 감소로 주택 구매력도 약화되어 있는 상태다. 현 시점의 가격 변화는 국지적인 것이며, 붕괴 국면이라 보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코노믹리뷰 20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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