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장수 출신 이남림씨 "난치병 어린이 위해 써달라" 2차례 60억 기부
“30억원을 세상에 내놓을 땐 솔직히 사흘 밤낮 잠을 설치며 고민했어요. 하지만 30년 전 서울 판자촌에서 새우잠 자던 내 젊은 날을 떠올려보니 이웃에 손을 뻗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결단하고 실천해버리니 마음이 후련하고 행복해지더라고요.”
청년 시절 판자촌에서 살면서 볼펜 장사로 자수성가한 60대가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모두 60억원을 사회에 ‘조용히’ 기부한 사실이 9일 뒤늦게 알려졌다. 남대문시장에서 안경 도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남림 (61·경기도 용인시 상현동)씨는 지난 2005년 1월과 2006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불우이웃 돕기 프로그램인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30억원씩 총 60억원을 내놓았다.
30억원은 이 프로그램이 연간 모으는 기부금의 약 80%에 이르며, 150여명의 수술비를 한꺼번에 후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씨는 이에 앞서 2002년과 2003년에도 태풍 피해를 입은 이웃을 위해 1억원씩 모두 2억원의 성금을 냈다. 이씨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상경했다. 가난 때문에 야학에서 공부를 했던 그는 18살 때부터 남대문에서 볼펜·만년필 장사를 했다.
돈을 모은 뒤에는 남대문시장에서 안경 도매점을 시작했고, 1984년엔 경기도 용인 상현동과 이의동 지역 땅 2500여평을 샀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용인에 아파트 건설붐이 일며 이 일대 그의 땅 1800여평이 건설업체에 거액에 팔려 ‘횡재’를 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며 세금 내고 남은 돈 전액을 아들을 시켜 방송국에 보낸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나머지 땅이 현재 개발 중인 광교신도시 부지로 편입되면서 보상금이 나왔지만 역시 이씨는 같은 길을 선택했다.
‘제 자신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왔기에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감수해야 할 심적 고충의 깊이를 공감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려 노력했습니다만 아직도 더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난해 두 번째 기부 당시 이씨가 방송국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이 같은 성금을 내고도 사회에 알려지기를 꺼린 이씨는 이번 30억원 추가 기부에 대해서도 “알려지는 것이 싫다”며 말을 아꼈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가진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부는 판단이 흐려지는 70세 이전에 결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2남1녀의 자식들도 내 기부 결심에 적극 호응해줘 기쁩니다.”
조선일보 20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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