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있는 ‘JC빛소망안과’ 원장실 책장에는 중국어, 영어, 방글라데시어로 적힌 편지 수십 장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 병원 최경배(47) 원장으로부터 무료 백내장 수술을 받은 외국인 환자들이 보낸 것들이다.
최 원장은 1999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7년여 동안 36번 외국에 나갔다. 필리핀·몽골·캄보디아·방글라데시 등 20여 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1년 중 석 달 가량은 외국에서 지내며, 한 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수백 명씩 수술을 해준다.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환자를 맞는다. 지금까지 그에게 무료 수술을 받은 사람만 1만명이 넘었다. 국내에서 백내장 수술비는 의료보험이 있을 경우 보통 20만~30만원 정도 한다. 지금까지 1만명이 넘었으니 돈으로 따지면 20억~30억원을 기부한 셈이다.
“1999년 캄보디아에 갔다가 우연히 18살 소년의 백내장 수술을 공짜로 해준 적이 있어요. 가난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던 애였죠. 그 소년이 ‘너무 고맙다’고 말하는데, 가슴 속 어디선가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 왔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최 원장이 외국에 나갈 때 부인 윤정임(44)씨도 동행한다. 윤씨는 수술 장비나 약을 챙기는 일을 맡는다. 그는 처음엔 남편의 ‘지나친’ 의료 봉사에 반대했지만 이제는 최 원장의 강력한 지지자가 됐다.
“감동적인 일들은 가족들이 기다리는 수술실 밖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2005년 몽골 소녀의 눈을 고쳐준 적이 있는데, 부모가 이제 딸이 시집갈 수 있게 됐다며 기뻐서 펑펑 울더라고요. 인생의 은인이라면서 말젖을 은쟁반에 담아서 가져 왔어요. 가족들이 느끼는 기쁨… 저에게도 전염이 돼요.”
최 원장은 어렸을 때 결핵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했다. 부친의 사업이 실패한 후 찢어지게 가난한 학창 생활을 보냈다. 의과 대학(중앙대)도 고학(苦學)으로 다녔다.
요즘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조선족 동포와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 달에 5명 정도씩 시술을 해주고 있다. 최근에 백내장 수술뿐 아니라 ‘눈물 흘림증’ 수술도 무료로 해준다. 눈물흘림증은 코로 연결돼 있는 눈물길이 막혀서 눈물이 자꾸 흘러내리는 병이다. “이제 제가 하는 일이 신체로든 마음으로든 눈물 닦아 주는 일이 됐습니다.”
2007년 6월 20일 (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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