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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서글픈 歷史

“도덕성이 밥 먹여주냐…내 배가 불러야”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제1부 민심읽기 - (하) ‘
노무현이명박’ 변심 40대 심층좌담회

대통령 선거라는 거대한 정치 폭풍이 지나간 뒤, 〈한겨레〉는 서울에 사는 40대 남성 직장인 유권자 5명으로부터 ‘변심한’ 속내를 솔직하게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가 이번 선거에선 모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다.

〈한겨레〉가 지난 12월26일부터 이틀 동안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02년 노무현 후보에서 이명박 후보 쪽으로 지지를 옮긴 유권자는 무려 40.9%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40대는 80년대 민주화 시기에 이른바 ‘넥타이 부대’의 주역으로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의 핵심 지지층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2007년 대선에서는 되레 친기업·친시장 깃발을 내건 이명박 후보에게 40대의 52.9%가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표적집단 심층좌담회(FGD)는 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지난달 2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가 진행했으며, 〈한겨레〉가 조사를 의뢰한 사실도 좌담이 끝난 뒤 밝혔다. 참석자들의 이름은 가명이다.

“월급 적게 오르고 사교육비 껑충” 상대적 빈곤감 호소
‘이명박식 경제’ 양극화될까 걱정…말실수·독단성도 염려


서울에 사는 40대 남성 직장인의 ‘변심’ 이유에 대한 답변은 간결했다. ‘도덕성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나름의 인식과 평가가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냉정했다. 명분보다는 각자가 딛고 있는 일상생활과 가족에 집착했다. 진보개혁 세력의 주춧돌임을 자임했던 40대들에게도 나이에 따른 ‘세대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사회정의에 대한 민감도는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참석자들은 ‘경제’를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로 내건 이명박 당선인에 대해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한 낙관보다는 유보적이거나 관망하겠다는 태도가 지배적이었다. 대통령 당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1997년이나 2002년보다 훨씬 차분해진 것이다.


① 이명박 당선인 지지 이유
지난 10년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에 대한 회고적 평가와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 부재 때문에 이명박 당선인 쪽으로 표심이 쏠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로 ‘대안이 없어 차선으로’, ‘10년 간 민주정권이 잘못해서’라는 쪽이 좌담회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명박 당선인을 ‘적극적인 대안’이라며 옹호한 목소리는 적었다. 그러나 대선 기간 내내 논란이 일었던 이명박 당선인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 참석자들은 ‘도덕성보다 경제’라며 관대함을 보였다.

안정인(이하 안)=한나라당이 잘해서, 예뻐서 찍은 게 아니다. 외국 신문에도 나왔잖냐. 한나라당에서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나와도 당선된다고.

이동하(이하 이)=특별히 지지할 후보가 없었고 건설회사 최고경영자 출신이라 경제적인 기대감 때문에 찍었다. 도덕적인 면은 찜찜했지만 큰 건 아니라고 봤다.

강치성(이하 강)=4년 동안 너무 배고프니까 ‘도덕성이 밥 먹여 주느냐’, ‘도덕성은 안 좋아도 내 배 부르면 안 되겠나’ 싶어 뽑았다. 극단적으로, 벼랑 끝에서 선택한 것 같다. 경제 때문에 도덕성은 다 던져버리고, ‘이명박보다 경제에 나은 사람이 없다’ 하는 식으로.

박성식(이하 박)=어차피 그 사람(이명박 당선인)은 돈이 많이 있고 재산이 있다는 것을 다 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부를 축적하는 데 있어 양심적으로만 갈 수 없기 때문에 (도덕성 부분은)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②당선인에 대한 기대와 우려
40대 직장인인 참석자들은 이 당선인의 서울시장 및 대기업 최고경영자로서의 경험에 신뢰를 보냈다. 이들의 머릿속에 이 당선인은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는 ‘검증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그러나 이 당선인의 ‘독단적인’ 이미지와 ‘말실수’ 등은 우려스러운 요소로 꼽혔다.

안=검증된 대통령이다. 그 사람은 첫째, 둘째, 셋째 공약도 경제였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할 거라는 기대는 갖고 있다. 참여정부보다 나을 것 같다. (걱정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처럼 입이 가볍다. 말실수가 많다.

강=일단 선택은 했는데 앞으로 걱정이나 염려도 많다. 이 사람이 정말 경제를 양심적으로 잘 성장시킬까?

예를 들어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한쪽은 소외시키면서 가진 자들만 경제 성장시키면 안 될 거 아니냐. 그런 부분은 상당히 염려가 된다. 밀어붙이는 건 좋은데 남하고 조화를 이루거나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



이=너무 경제적으로만 치우치면 편협하게 정책을 펴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경제적인 게 강점이지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③정말 경제가 나빠졌나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은 실패했는가. 경제 실패론의 실체는 무엇인가. 참석자들에게 심층적으로 물어본 결과, 오락가락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신뢰의 위기’가 심리적 바탕에 깔려 있음이 드러났다. 일부 참석자들은 정부의 말만 믿고 노무현 정권 초기에 집을 사지 않았다며, 부동산 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토로했다. 한 참석자는 “손실을 책임지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부동산은 제쳐놓고 ‘정말 개인적으로 생활이 나빠졌냐’고 재차 묻자, 생활비 상승과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심리적 박탈감을 ‘실패론’의 근거로 꼽았다.

이=이번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이 가장 빈번하게 나왔을 텐데, 툭 하면 몇 개월에 한 번씩 바꿨다. 정권 초기에는 부동산값이 잡힐까 해서 집 사는 걸 보류했는데, 그때 사 놓을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김경정(이하 김)=도덕성이 문제가 아니고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나도 집을 안 사고 있었더니만 집값이 두 배 뛰었다. 그 사람들이 손실을 책임져야 한다.

박=저는 나빠진 것도 없고 좋아진 것도 없다. 우스개 소리로, 주말에 고속도로를 가보면 많이 밀린다. 경기가 안 좋다는데 다들 어디를 그렇게 놀러 가나 그런 생각도 든다.

이=소득이야 해마다 월급 오르는 것뿐이지만 비교해 보면 그것만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 학원비나 여러 가지가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

“정권 돌고 돌아야…보수 실패땐 다시 진보로”
새정권 잘할지 확신 못해” 견제필요성 공감
“국민과 동떨어진 정책펴면 진보 설 땅 없어”


강=노무현 정권은 경기가 나빠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맞다.

삼성이나 현대 등 대기업들은 해외에 공장 차리고 수출을 많이 해서 그것 때문에 (그 회사) 근로자들은 배부르지 않았느냐. 그런데 작은 영세기업은 못 벌었다. 지금 빈곤은 상대적 빈곤이다. 장사 안 된다고 해도 유명 백화점은 엄청나게 매출이 오르고 해외여행 가려고 줄 서 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월급은 적게 오르고, 사교육비 등 씀씀이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④정치적 귀속 의식

자신의 정치 성향을 묻자, 한 명을 제외하곤 보수와 중도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진보에서 보수로 옮겨왔다고 답했다. 왜 변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들에게서 돌아온 답은 ‘생활’이었다. 특히 조기 퇴직이라는 문제가 이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면서 보수 쪽으로 내몰고 있음도 엿볼 수 있었다.

박=(참여정부의) 정책에서 여러 착오가 있었고 상황은 점점 다 나빠졌다. 그런데 나이는 계속 먹어가고 아이도 커가고 자기 노후 걱정도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려우니까 이제 안정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이=시기상으로 30대와 40대의 차이점을 보면, 직장생활이든 사업이든 30대는 열심히 뛰어다니고 40대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할 나이다. 실제로 대기업이나 일반기업에선 (40대는) 위험한 시기이고,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갈 시기라 변화보다는 안정적으로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다.

김=나도 내 노후와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많이 고민한다. 그래서 변화되고 새로운 시장, 자유, 민주화도 좋지만 중요한 건 내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닌가 싶다.

⑤진보세력 필요성과 가능성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진보개혁 세력과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같다고 보았다. 정치권의 진보개혁 세력으로는 통합신당을 꼽았다. 또한 대안 세력으로든, 견제 세력으로든 자신들이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진보개혁 세력의 존재 필요성은 인정했다.

이=진보개혁 세력이 대안일 수도 있다. 어차피 정권이란 게 돌고 돌아야 하고 그래야 정화도 되고 투명해진다. 이명박 정권이 잘할지 100% 확신은 못 한다. 어떤 놈이 잡아도 정치는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 10년보다는 더 나아질 거란 기대가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시 진보개혁 세력으로 바뀔 수 있다.

강=진보개혁 세력은 경제적 약자를 위해 꼭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이 진보세력인데 진보세력이 실패해 국민이 보수로 넘어오지 않았느냐. 보수가 실패하면 다시 진보를 찾을 거라고 본다. 전문성 있고 차별화된 당이면 좋겠다.

안=민주노동당은 진보당이라기보다 노동자의 당이라고 해야 이해가 더 빠른 것 같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반영한 당이 아니고 근로자를 위한 당의 이미지가 있다.

김=진보의 역할이라면 덜 민주적인 걸 민주적으로 하고, 약한 사람에게 힘이 된다든지, 견제와 균형 측면에서 시민에게 다가갈 진보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싶은데 그와 동떨어진 정책을 하면 진보는 설 땅이 없다.

이용인 이화주 기자 yyi@hani.co.kr



표적집단 심층좌담회(에프지디·FGD·Focus Group Discussion)

흔히 ‘몇 %’ 등 수치만 보여주는 양적인 여론조사와 달리, 어떤 집단의 의견이 형성된 세부적인 맥락과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는 대표적인 ‘질적 조사’ 방법의 하나이다. 대개 비슷한 특성을 지닌 5~8인의 소수 집단이 같은 공간에서 진행자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에프지디는 조사 주제와 관련한 대화를 유도해 심층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하므로, 도출된 결론을 대표성 있는 의견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한겨레 2008.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