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窓)/-. 아름다운 世上

청국장 만큼 구수한 이웃사랑 27년

 



김재홍씨는 30년 가까이 평택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나는 천성이 남 뒤치다꺼리하는 것을 좋아해서”라며 활짝 웃었다.
평택의 '아름다운 시민' 김재홍씨 청국장식당 영업은 부업…

본업은 봉사활동 범죄예방·환경감시·새마을 운동

一人多役 평택 주민사정 손금보듯…

영원한 '王통장'

평택 박애병원 뒤편 '원조 시골청국장' 가게. 이 가게 '사장님 겸 배달원'인 김재홍(68·평택시 평택동)씨 이력을 듣고 나면 '감투 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검찰청 범죄예방위원, 경기도 명예환경감시원, 신평동 복지위원, 대한적십자 남부복지관 평택봉사회 회원…. 1991년부터 2007년 12월 정년 퇴임할 때까지 무려 17년간 '장기집권'한 신평동 통장이었고
전두환 대통령 때는 반장, 노태우 대통령 때는 새마을지도자였다. 통장, 반장 경력을 다 합치면 27년이나 된다.

직함이 여럿이지만 '한 자리 하겠다'는 욕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평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그의 이웃 사랑이 병(病)이라면 병이다.

◆지역 사정에 환한 터줏대감

김씨는 1989년부터 적십자 남부복지관 산하 평택봉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해 현장에서 봉사활동 할 때는 20대 젊은이 못지않다. 격월로 평택시내 독거노인 12가구를 돌며 쌀과 음식을 전달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직접 서류를 떼 가며 형편이 어려운 10가구가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게 도왔고, '서류상의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노인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동사무소에 사정을 알리고 구호미(米) 10㎏라도 챙겨서 보내 주는 일도 그의 일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분야 전문가인 사회복지사들도 그에게 자문할 정도. 이렇게 열심인데 모두가 월급 없는 봉사다.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고있다고 하자, 그는 "통장을 오래했고 식당 배달 일을 해서 그런지 남들보다 지역 사정에 조금 밝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조금만 신경 쓰고 발품을 팔면 이웃에 딱한 사정을 듣게 되죠. 봉사를 나갔다가 주민들이 '이 집보다 저 집이 더 어려운데…'라고 하면 그 집에 가보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2003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저소득층 12가구에 도시락을 배달한다. 복지관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제때 밥을 먹기 어려운 집에 보내는 사업. 돈은 정부가 대지만 배달이 문제다. 소식을 들은 김씨는 망설이지 않고 자원했다. 가게 배달 일을 도맡고 있어 바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김씨의 답은 간단했다. "어차피 배달일 다니는데 짬짬이 다니면 되지."

도시락 배달이 있는 월요일과 목요일, 그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출발한다. 빈집에 도시락만 놓고 올 수도 없고 도시락을 전하면서 한번이라도 문 안을 들여다보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정작 그는 "식당을 하는 사람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어려운 분들에게 드려야 하는데 그럴 형편은 못 돼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눈·비에 아랑곳 안해

김씨는 14일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는 제2회 아름다운 시민상 일반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역과 이웃을 위해 나누고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6시30분 평택시
청소년문화센터 대강당에서 열린다. 김씨는 정영주 현덕면장(공무원부문), 장호철 경기도의회 의원(특별상)과 함께 상을 받게 된다.

"사실 나야 가진 게 없으니까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거죠. 벌이가 좋으면 자선단체에 기부도 할 텐데…. 지난 번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도 만 몇 천 원 밖에 내지 못해서 영 마음에 걸렸어요."

그는 "봉사라는 말이 흔해진 시대일수록 '참 봉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용기와 희망을 줄 때 참 봉사가 되죠. 그런 점에도 전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아들이 장성해 손자까지 봤지만 막내 동생 뻘인 구호전문가 한비야(50)씨의 열렬한 팬이다. 한씨가 쓴 책 내용을 줄줄 이야기할 정도다. "사실 조금 젊고 형편만 좋으면 한비야 처럼 세계를 각지에서 봉사하며 살 텐데 늘 아쉬워요."

전국에 눈이 내린 21일, 김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제가 오토바이 운행 중인데요. 이따 전화해주세요." 얼마 있다 전화가 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도시락을 가져다주느라…." 눈 때문에 도로가 미끄러웠지만 김씨의 도시락 배달은 멈추지 않았다.

8년 된 김씨의 빨간색 '시티100' 오토바이는 4만6640㎞를 달렸다. 일요일도 없이 하루 평균 16㎞를 달려 고물 아닌 고물이 됐지만 오늘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2008년 1월 23일 (수) 03:48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