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窓)/-. 아름다운 世上

`불사조` 박철순이 말하는 제2의 인생

 최근 전직 프로야구선수 이호성(41)씨가 네 모녀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스포츠 선수들은 30대 중후반에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개척하게 된다. 그러나 운동에만 몰두해온 선수들이 스타 의식을 버리고 늦은 나이에 사회 생활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이호성씨 역시 프로야구에서 스타로 활약했으나 은퇴 뒤 사업에 실패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 선수들의 은퇴 후 삶과 애환을 살펴봤다.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이번 사건을 누구보다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왕년의 대스타가 있다. '불사조'라 불리며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활약한 뒤 이제는 어엿한 '회장님'으로 변신한 사업가 박철순(52)씨다.

IT 관련 제조업체인 '모든테크'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지난 12일 일간스포츠(IS)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같은 야구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죄송하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 회장은 이호성(41)씨와 연세대 선후배이고 나란히 프로야구 스타 출신이며, 은퇴 후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점 등 비슷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박 회장은 지난 1998년 7월 OB(현 두산) 베어스 코치직에서 물러나며 그라운드를 떠난 뒤 배명고 후배의 통신 설비 관련 회사를 인수했다.

"지도자는 성격상 맞지 않았다.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박 회장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다. 이후 2001년에는 역시 고교 후배인 김백선 모든테크 사장과 기업 합병을 해 현재 13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골프용품 제조업체인 '알룩 스포츠'도 운영하고 있다.

야구 선수가 낯선 사업 세계에 뛰어 들다 보니 참기 어려운 시련과 좌절도 많았다. 무엇보다 박 회장을 괴롭힌 것은 "야구 선수가 사업에 대해 뭘 알겠는가. 속칭 '바지 사장' 아니겠는가"라는 주위의 시선이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매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 초기에는 IMF를 맞았고, 공사 대금이 안 나와 직원들의 월급이 입금 안 될 때는 당장 때려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역시 쟤는 안 돼'라는 얘기를 듣기 싫었다. 매일 새벽 6시 반에 출근하면서 더 이를 악물었다"고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박 회장은 "사회에 나와 보니 나는 박철순이 아니라 OB 베어스 선수이고 야구인이었다. 이번 사건 이후 나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이 무척 따갑게 느껴진다"면서 "대학 후배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서로 교류는 없었지만, 아직도 이호성씨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이호성씨 역시 야구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사업에 욕심을 부린 것 같다.

하지만 그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안타깝다. 주위 사람들이 버팀목이 돼주지 못한 점도 너무 화가 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침 인터뷰 도중 박 회장을 알아보지 못한 한 여성이 카페 옆 자리에서 친구에게 "범인이 전직 야구 선수라며?"라고 말하자 박 회장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은퇴 후 사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박 회장은 "선수 때와 똑같이 묵묵히 열심히 하면 된다. 물론 좌절도 있겠지만 돈의 유혹과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급 자동차도 버리고, 스테이크 먹다가 라면 먹는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조언을 전했다.

박 회장은 1년 전쯤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한 것이 대장암으로 잘못 알려져 주위의 걱정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젠 아무 문제 없다. 얼마 전 재검사를 해보니 깨끗하다고 한다"며 밝게 웃은 박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만족도 안 했고, 후회도 안 했다. 꿈이 있다면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전문경영인인 김백선 사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라고 의욕을 드러냈다.

일간스포츠  200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