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窓)/-. 아름다운 世上

이순재 "출마하라고요? 허허 내 행복을 뺏지말아요"

◇MBC아카데미 연기학원 입구, 자신의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순재씨. 그는 “연기는 언제나 미완성이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총선의 계절, 그의 귓가에 다시 유혹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나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국민배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연기자 이순재(74)씨. 그는 한때 정치인이었다. 14대 국회의원(1992∼96년·민자당·서울 중랑갑)을 지냈다. 88년 총선 도전을 기점으로 하면 8년을 정치인으로 살았다. 50대 중반에 입문해 환갑이 지나 정치판을 떠났다.

최근 총선 바람을 타고 정치인 시절 그를 도왔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출마하시라”는 권유였다. “허허, 나의 행복권을 빼앗지 말아요.”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절에 지인은 입맛을 다시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의 50년 연기 인생에서 정치는 외도(外道)였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치를 접은 것도 ‘본업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다. “내겐 연기가 본업이고 기력이 남아 있을 때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로부터 10여년, 세월은 다시 그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것도 뿌리 깊은 거목처럼 단단하게.

TV탤런트, 연극배우, 세종대 석좌교수, MBC아카데미 연기학원 원장, 중랑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다양한 직함과 역할은 묵직한 그의 존재감을 웅변하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열리던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아카데미 연기학원에서 그를 만났다. 때가 때인지라 자연스럽게 정치판 얘기로 물꼬를 텄다. 자질 논란의 복판에 선 몇몇 장관 후보자들이 먼저 도마에 올랐다.
◇이순재씨는 연기자의 성공비결에 대해 “늘 백지상태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문제가 있다면 알아서 빨리빨리 사퇴해야지, 군색한 변명 늘어놓지 말고. 자기 문제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 것 아닌가.” 결기에 찬 목소리였다. “이런 모∼옷난 놈”하며 호통치던 허준의 스승 유의태(드라마 ‘허준’에서)처럼. 이날 오후 결국 자녀 교육비를 이중 공제받은 남주홍 통일장관, “땅을 사랑할 뿐”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투기 의혹을 변명했던 박은경 환경장관 후보자는 ‘야당 공세와 여론’, ‘여당과 청와대의 눈치’에 떼밀려 사퇴했다.

“정치인이건 관료건 공인은 개인적 행복은 포기해야 합니다. 정말 나라 발전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몸바칠 각오로 들어가야지, 이제 정치인이라고 폼 잡는 그런 시대는 아니지요.”

공인도 사람인데 개인적 행복을 포기하라니, ‘가혹한 기준’이었다. 그 대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명예를 먹고 사는 거죠.”

정치판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애당초 그는 금배지 못 달아 안달하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연기자협회 회장을 하던 이낙훈씨에게 비례대표 제의가 왔지요. 그래서 그를 돕기 위해 같이 민정당에 입당했는데 13대 총선 앞두고 심명보 사무총장이 출마를 권유해요.” 대답은 ‘노’였다. “정치적으로 우리(연기자) 뜻을 전달할 창구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뿐이었지요.” 당시 그에게 정치란 그런 것이었다. 그는 “고향이 이북(함경북도 회령)이다. 뛸 입장이 아니다”고 고사한 뒤 촬영 스케줄을 핑계로 제주도 서귀포로 내려갔다.

“서귀포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공천 발표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에서 중랑갑에 내이름이 딱 나오는 겁니다. 깜짝 놀라 전화하니 ‘이미 대통령 결정도 다 나버렸다. 비용은 당에서 좀 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떼밀리듯 총선에 나갔으나 평민당 이상수 후보(전 노동부 장관)에게 패했다. “선거자금 댈 테니 다시 한번 나가시죠.” 14대 총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곳이어서 아무리 찾아봐도 지원자가 없자 당에서 재출마를 강권했다고 한다. 이상수 의원과의 ‘리턴 매치’. 이번의 승자는 그였다. 

두 차례 맞붙어 싸우며 이상수 전 장관과는 각별한 사이가 됐다. 이 전 장관이 2005년 10·26 부천 원미구갑 재선거에 도전했을 땐 후원회장까지 맡았다. “이 의원이 보여준 통 큰 모습 때문에 더욱 가까워졌지요. 그는 선거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고 당선된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줬습니다.”

그는 “한때 정치에 몸담았지만 여전히 연기자로서, 배우로서 이 분야를 대변하기 위한 것이었지, 전문 정치인이고자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본업인 연기자로 컴백하는 것은 그에겐 예정된 일이었다.

이순재씨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다. 최고의 학벌을 나온 그가 ‘딴따라’로 불리는 세계에 발을 디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대접 못 받는 직업이었죠. 경제적으로도 전도가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모험이 필요했고 예술을 한다는 느낌으로 하게 됐죠. 다른 명분이 있을 수 없었어요.”

대학 시절 그는 영화를 워낙 좋아했고 이 같은 취향이 연기 인생의 출발점이자 밑거름이 됐다. 대학 3학년 때는 인문대 학생회에서 서울대 전체 연극 모임을 주도하게 됐고 이는 그가 연기 인생을 걷게 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순재씨의 연기변신은 다른 연기자들을 압도한다. 위로부터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  ‘사랑이 뭐길래’ ‘허준’ ‘이산’ 출연 당시 모습.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군 제대 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 역을 맡았다. 로미오 역으로는 배우 남궁원씨가 이미 캐스팅된 상태. 연극을 시작하면서 가족과는 연락을 끊었다.

“나도 체면이 있지, 대학 나와서까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지요. 그런데 어느날 공연장에 누가 면회를 왔다고 해서 나가보니 대전에서 아버지가 올라오신 겁니다.” 부친은 “이런 일을 꼭 해야겠냐”며 만류하고 나무랐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이제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의 결연함에 부친은 결국 “그래 어느 분야든 일류가 되면 밥은 먹지 않겠냐. 최선을 다해보라”며 허락했다고 한다.

사극 연출로 유명한 이병훈 PD(프로듀서)는 연기자 이순재를 ‘최고의 배우’로 꼽는다.

“예술에 완성은 없습니다.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지요.” 그는 “‘최고의 배우’란 칭송은 이 감독의 과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내 모든 것입니다. 이것에 장애가 되는 것은 나와 관계할 수 없습니다.” 과찬일지언정 그런 열정, 몰입이 있었기에 ‘최고의 배우’란 칭송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변신’에 능하다. 가부장적인 대발이 아버지(‘사랑이 뭐길래’)에서 서릿발 같은 스승 유의태(‘허준’),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다 들키는 코믹한 가장(‘거침없이 하이킥’)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캐릭터들을 척척 소화해냈다.

성공비결을 묻자 그는 “고정관념, 기득권적 이미지를 버리고 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려는 노력”이라고 답했다. “대발이 아버지는 1992년 제작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필요했던 인물입니다. 그 이후 대발이 아버지를 재연한 적은 없지요.”

그는 “고정관념,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배우는 맨날 그 꼴”이라고 말했다. 예쁘게 보이려고 외모에 집착해 분장하는 중견 여자 연기자에게는 가끔 일침을 놓기도 한다고 했다. “여보 당신 이쁘다는 건 30년 전부터 알고 있어”라고. ‘늘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는 것.’ 연기자에 대한 이순재의 정의다.

그는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작품과 역할의 성격을 완벽히 이해하고 그에 맞게 분장 하나하나 세밀한 변화까지 신경 쓰는 연기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인터뷰 도중 그가 앉은 소파 옆에 ‘이산 정조대왕-조선의 이노베이터’란 책이 눈에 띄었다. 요즘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이산’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읽었다고 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이산의 아버지 ‘영조’ 역을 맡았고 얼마 전 영조의 죽음과 함께 퇴장했다.

 

2008년 3월 1일 (토) 11:02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