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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사기죄 살인죄, 부시를 심판하라

 

‘죄없는’ 이라크 침공하고 국민 전쟁공범 만들어
전직 검사가 바라본 미국의 어두운 현재와 미래
한겨레 한승동 기자
≫ 2001년 12월 9·11테러로 건물이 완전히 무너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대통령을 기소하다〉
빈센트 불리오시 지음·홍민경 최지향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3000원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세상도 달라 보인다. 한쪽의 절대선이 다른 쪽에선 절대악으로 비칠 수 있다. 요즘 한국사회가 그 표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일체유심조)는 상대주의가 다 통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엉키게 만들 뿐이다. 현실에선 그래도 옳은 게 있고 그른 게 있다. 그럼 어떤 게 옳은 것인가? 중요한 것은 먼저 각 주장을 다 들어보는 것이다. 판단은 그 다음이다.

‘미국 최고의 검사’라는 칭송을 받았다는 전직 유명 법조인이자 성공한 넌픽션작가인 빈센트 불리오시의  <대통령을 기소하다(The Prosecution of George W. Bush for Murder)>(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미국 민주당 온건파 시선으로 본 미국 정치현실이다. 집권 공화당 정치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고 신랄하며 비관적이다. 물론 정반대의 관점도 있을 것이다.

조지 부시가 총득표수에서 뒤지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취임한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그 8개월 뒤 9·11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9·11 비극의 책임에서 가해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거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공화당 부시 정권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시 정부 테러담당 보좌관을 지낸 리처드 클라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몇 달 동안이나 테러의 심각성을 무시해왔다. 약간의 관심만 보였다면, (9·11) 테러 공격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한 달 전인 8월6일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5주 동안 휴가를 즐기고 있던 부시 대통령에게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빈라덴 미국 영토 공격 결정’이라는 제목이 달린 일급비밀 메모를 전달했다. 거기엔 알카에다가 ‘비행기 납치’와 같은 공격을 준비하고 있고 그 조직원들이 미국 ‘연방정부건물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매우 구체적인 첩보들이 들어 있었다. 그에 앞서 6월30일 작성된 CIA 보고서는 ‘빈라덴이 큰 일을 꾸미고 있다’는 제목 아래 ‘대재앙’의 발생을 경고했다. 조지 테닛 CIA 국장도 당시 상황을 “안보는 빨간 불이 켜진 상태”, “거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그해 들어 9·11 직전까지 빈라덴에 관한 보고서가 40종을 넘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거의 손을 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일까. 어쨌든 9·11사태와 관련해 부시 정권 역시 중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9·11 이후 지지율이 오히려 90%대로 치솟았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이 엄청난 재앙 속에 명백히 실패로 귀착했는데도 2004년 대선에서 부시가 압승으로 재선되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나아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이명박 정권 창출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주술처럼 내세운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는 기실 자신들이 1997년에 저지른 패착과 파산이 부른 결과였다. 그런데도 대선에서 압승한 쪽은 파산 뒷수습을 한 세력이 아니라 그때 파산의 주역들이었다.


≫ 〈대통령을 기소하다〉
<대통령을 기소하다>는 부시와 그 측근들의 공모와 사기, 지적 수준 저하와 비판기능을 상실한 언론과 지식인의 동조,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대중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특히 4천여명의 미군 병사와 10만여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전쟁을 부시와 그의 측근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미국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요 살인범죄행위로 규정한다. 검사 출신답게 ‘부시를 살인혐의로 기소’(원제)하고 상정 가능한 반론들을 실증적 자료들을 통해 하나하나 논파하면서 유죄를 입증해가는 형식을 취한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부시와 그 측근들 사기행각의 핵심은 이라크 침공을 위한 사실 날조. 그것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를 대량 보유하고 있거나 곧 보유해 그것으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9·11사태를 주도한 빈라덴의 알카에다와 한통속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주장으로 요약된다.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임박한’(실제 이 단어 사용을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공격에 대비해 선제공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고 한 부시와 그 측근들 주장은 정당방위로 분칠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후세인이 알카에다와 한통속이라는 주장 역시 이라크 침공의 구실이 됐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근거없는 날조였다. 지은이는 이미 드러나 있지만 대중이 제대로 모르는 이 날조 사실들을 중앙정보국 등의 정보기관 보고서와 회의자료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꼼꼼히 입증하고 재구성한다.

이를 토대로 지은이는 ‘사상 최대의 사기꾼’ 부시가 의도적으로 국민을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가정하고 부시를 일급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제가 살아 있는 미국 38개주 배심원들 앞에 세워 실형을 받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럴 때 이런 문제가 대두된다. “실제 자기 신체를 이용하지 않은 살인에 대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나? 현직 대통령을 형사범죄로 기소할 수 있나? 의회가 승인한 합법적인 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나? 피해 당사자가 기소하지 않아도 범죄가 성립할 수 있나? 살인의 의도성을 증명할 수 있나?” 불리오시는 이 난관들을 모두 돌파한다. 그가 부시와 공모자들의 유죄를 확신하는 근거로 동원한 게 ‘결백한 피이용자(innocent agents)’와 ‘대위(대리) 책임법(vicarious liability rule)’.

지은이를 분노케 한 것은 살인죄만이 아니다. 1조 달러 이상을 낭비한 이라크 침공과 신자유주의 정책은 미국사회를 망가뜨리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그는 쇠락을 뒷받침하는 여러 통계들을 예시하지만, “이 나라를 엄청난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자격 미달의 부시를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의 쇠락을 충분히 입증하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부시 정권을 선망하는 정치집단이 배타적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미국의 쇠락 보나마나!

이 책의 해제를 쓴 김두식 경북대 교수에 따르면, ‘결백한 피이용자’란 우리 형법의 간접정범과 비슷한 구조의 미국 법이론이다. 예컨대 의사가 간호사에게 독약을 주며 환자에게 주사하도록 해 환자를 살해했는데 그 간호사가 주사한 약이 독약인 줄 모르고 있었다면 간호사는 결백한 피이용자로 간주돼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간호사를 이용해 환자를 살해한 의사는 살인죄로 처벌받는다. 이게 ‘대위 책임법’이다.

마찬가지로 부시도 자국병사 4천여명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도록 사건을 조작해서 결과적으로 이라크군과 민간인들로 이뤄진 반군들이 저항에 나서도록 유도해 미군들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다. 반군들은 침략자를 쫓아내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미군을 죽였을 뿐이므로 그들은 부시가 저지른 살인의 결백한 피이용자라 할 수 있다. 이라크인 10만여명을 죽인 죄악이 훨씬 더 크겠지만 부시 등을 미국 내 법정에 세우는 데는 현실적으로 소용이 없으므로 일단 논외로 했다.

미국의 미래를 가로막는 걸림돌, 곧 쇠락의 원인을 지은이 불리오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패했지만 인간의 본성과 악한 측면을 교묘히 파고들 줄 아는 보수주의자들 △사회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종교 근본주의자들 △보기 역겨운 작품만을 쏟아내며 문화를 오염시키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연예계를 든다.

역겨운 현상의 또다른 대표적 사례로 지은이는 부시 정부의 선전에 동조하고 있는 주류 언론을 꼽았다. 그는 최근 이라크에서 폭력이 줄어들고 있다며 그것을 ‘대단한 성공’으로 치부하는 <뉴욕타임스> 등의 보도에 대해, 그것은 시아파와 수니파 간 분파청소가 거의 완료된 데 따르는 것으로 “전쟁을 시작한 지 5년이나 지났다면 당연히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냐?”고 물었다.

지은이는 9명의 대법관 중에 진보적인 사람이 4명뿐이라는 데 절망하고 있다. 그가 보기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득세는 미국인의 지적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데, 지난 몇년 사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예수 재림 때 선택받은 자는 천국으로 가고 나머지는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휴거’에 관한 서적이었다. 또 2004년 대선에서 부시를 지지한 유권자들 가운데 40%가 휴거를 믿는 복음주의 기독교도였다.

부시 지지율은 최근 30% 안팎까지 내려가 있는데, 이는 대중이 이라크 침공 자체나 부시의 극우정치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이 실패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은이는 풀이한다. 지금이라도 이라크 전쟁이 잘 풀리면 부시 지지율은 급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인이 원하는 것은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오직 탐욕스런 승리, 이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쇠락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로 빈곤층을 돕자거나 그 문제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퇴장당하는 현상을 든다. 그 결과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돼, 약 5천만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고 쿠바에는 없는 길거리 노숙인이 수백만명에 이르게 됐다고 지은이 지적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 200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