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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삶)/-. 성공경영

명함 4종류 들고 다니는 이순우 우리은행장

 

남이 잘하는 것도 수용해 1등해야죠
본부에서 토론해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무조건 현장에 답이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60)은 들고 다니는 명함의 종류가 네 가지다. 이유를 물었더니 "받는 사람의 기분이 좋으니까"라고 말한다. `고객이 좋아한다면 안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표정이다.

명함 한 종류는 전면에 `고객님을 섬기겠습니다`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박혀 있다. `고객제일`이라는 이 행장의 철학과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점자 명함, 세례명과 함께 믿음ㆍ소망ㆍ사랑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적힌 가톨릭 명함, 외국인을 위한 영어 명함 등에도 고객제일 철학이 담겨 있다.

"눈이 침침하고 다리가 불편하신 분한테 점자 명함 드리니까 무척 좋아하더군요.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또 가톨릭 교단은 저희 은행의 주거래은행이죠. 신부님 만날 때 미카엘이라는 세례명이 적힌 명함을 드리면 반가워하십니다."

그러나 이들 명함이 전적으로 이 행장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면 금방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의 결과다.

"모 언론사 임원을 만났는데 명함에 `님을 섬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고객님을 섬기겠습니다`로 바꿔서 명함에 넣었어요. 어느 스님을 만났더니 명함에 휴대폰이 `손전화`로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손전화로 바꿨어요."

남의 아이디어도 내 것으로 만드는 이 행장의 성격은 경영철학에서도 금방 드러난다. "남 따라 하면 2등은 합니다. 그것도 안 하면 꼴찌를 합니다. 다른 기업이 잘 하는 것은 우리도 모방해서 잘 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은행이 우리보다 잘하는 것도 많습니다."

남들을 따라 한다고 꼭 2등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따라 하면 1등도 한다.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남들에게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꿰어 혁신적인 제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1등이 됐다는 게 오데드 센카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의 평가다.

그렇다면 이 행장은 은행 경영에 어떻게 모방을 활용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뜻밖에도 `현장 경영` 얘기가 나왔다. 남들이 어떻게 좋은 아이디어를 끄집어내고 실천하는지 알려면 남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현장을 체험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CEO일수록 현장을 모르면 안 됩니다. 제가 1982년에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에 연수를 갔었어요. (영국에서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옥스퍼드대 수학과를 나온 사람이 조그만 지점에서 정말 허드렛일을 하더군요. 그래서 `좋은 일자리도 많을텐데 하필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 직원이 `내가 관리자가 되려면 밑에 직원이 뭘 하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저도 현장 중심을 강조합니다. 본부에서 책상 앞에 앉아서 토론해야 아무 소용 없어요."

최근 우리은행 문화를 바꾸기 위해 행장 직속으로 설치한 태스크포스가 만든 `고현정`이라는 건배사에도 이 행장의 철학이 녹아 있다. 고현정은 고객제일ㆍ현장경영ㆍ정도영업의 머리글자를 따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고현정은 공식 건배사로 확정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 연예인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보다는 이 행장이 중요시하는 `모두 다함께`라는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왜 폭탄주를 먹고 건배사를 하겠습니까. 같이 하자는 뜻 아니겠습니까. (고현정 건배사는) 함께 몰아쳐서 난관을 극복하는 에너지가 드러나 있지 않아요."

리더는 최고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모든 직원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시너지를 내야 한다. 이 마음을 건배사에도 담고 싶은 게 이 행장의 속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행장은 어떤 식으로 직원들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것일까. 그는 `솔선수범`의 경영철학을 제시한다.

"누가 묻더군요. `은행장이 돼 직원에게 무엇을 요구했느냐`고요. 하지만 저는 요구한 게 없습니다. 요구하고 싶으면 제가 먼저 하면 되니까요. 제가 고객들을 잘 모시면 직원들이 모두 따라할 것 아닙니까. 지금은 폭탄주를 마시더라도 먼저 마시고 술잔을 돌리는 솔선수범의 시대입니다. 저는 아침에 출근할 때도 청원경찰에게 제가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그가 1977년 우리은행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사해 줄곧 두각을 나타내면서 올해 3월 CEO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힘도 솔선수범에 있다. 임원ㆍ부행장ㆍ행장 등의 자리가 모두 자신에게 `덤`으로 주어진 혜택이기 때문에 지위를 누리기보다는 솔선수범으로 회사에 공헌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제가 임원이 되고부터 남은 직장생활은 덤이라고 생각했어요. 2004년 부행장이 된 뒤에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은행원이 돼 사회에 특별히 기여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까 이런 기회를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자고 생각했지요."

이 은행장은 스스로 CEO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 해봤다고 한다. 그는 "산에 오를 때 꼭대기를 보고 가면 결국 지쳐서 못 간다"며 "앞 발자국만 보고 가다보면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도 은행장 되겠다고 생각했으면 예전에 지쳤을 것입니다. 항상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최고경영자가 될 인재의 최고 덕목일 것이다.



■ He is…
△성균관대 법대 졸업(1977년) △상업은행 입행(1977년) △상업은행 홍보실장(98년) △한빛은행 인사부 부장(1999년) △우리은행 경영지원 본부장 (2004년) △우리은행 개인고객1본부 부행장(2007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2008년) △우리은행 은행장(2011년 3월)

 

 

 

매일경제  2011.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