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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현대인들 복잡한것 내려놓는 연습해야(수덕사 방장(方丈) 설정스님)

◆ 부처님오신날 인터뷰 / 수덕사 방장(方丈) 설정스님 ◆

 

우주와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니 괴로운것…자기 삶 충실하면 남 비판할 까닭 없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해

 

 

6ㆍ25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5년 봄. 열세 살 된 소년이 아버지 손을 잡고 총총걸음으로 수덕사(충남 예산) 계단을 오른다.


"너는 사회에 있으면 오래 살지 못하겠다." 스님들의 권유로 재가불자인 아버지는 선뜻 아들을 절에 보내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어린 나이에 속세를 등진다.

어머니가 절에 올 때마다 숨었던 그 아이가 수덕사 주지가 되고 2009년 조계종 5대 총림(叢林) 가운데 하나인 수덕사 덕숭총림 방장(方丈ㆍ최고지도자)이 됐다. 세수 칠순을 앞둔 설정(雪靖) 대종사(69)다. 10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최근 덕숭총림에 소속된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화계사는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린 고(故) 숭산 스님이 있던 곳으로 외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한국 사찰이다.

-숭산 스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신심과 열정이 대단하셨어요. 함경도 기질이 펄펄 흘러넘쳤죠. 숭산 스님의 본사가 수덕사인데 수덕사는 일제에 항거해 한국 불교 정통성을 지킨 만공선사가 있던 절입니다. 제자들에게도 창씨개명을 하지 못하게 했죠.

경허-만공-고봉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은 분으로 불교 정화 운동을 주도했던 분입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불교의 어떤 매력 때문에 수행하러 오는 걸까요.
▶외국에서 한국 불교를 접한 것은 숭산 스님이 미국에서 활동했던 시기로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서구 사상은 수직적이고 이분법적입니다. 서구 사상만으로는 지구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된 것이죠. 선(禪)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 최고의 안정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서양에서도 자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선(禪)을 쉽게 설명해주시죠.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일체 잡념이 없는 것, 청정해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상태죠. 맑은 마음이라 할 때는 선과 악도 없죠. 가령 구정물통을 막대기로 저으면 계속 구정물이 나옵니다. 그걸 멈추게 하려면 그냥 내버려둬야 가라앉습니다.

-불교가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서양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종교(宗敎)라는 뜻은 한자의 의미대로 바탕이자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과 생명, 우주의 기본이 되는 것이 종교입니다. 불교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주를 다루는 종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바세계의 모순 때문에 중생은 끝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원(願)을 가지고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최초의 설법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데 생명 하나하나가 다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죠. 깨달음을 얻고 난 뒤 45년간 설법하신 내용도 `어떻게 하면 인간이 모순에서 탈출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 길을 다 열어놓고 모든 약방문을 만드셨습니다.

-깨달음은 무엇인가요.
▶내가 나를 찾는 것. 잃어버리고 살았던 나를 다시 찾는 것이죠. 중생은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참나를 찾으면 생사가 끊어지고 주관과 객관이 떨어집니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것이죠. 인간이 고통받고 괴로운 것은 우주와 내가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깨우친 분들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는 깨우친 분들이 세상 사람들을 향해 구제방편을 펴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깨달은 경지가 온전하지 못해서 중생 교화를 펴는 데도 여의치 않는 경우입니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많은 병고를 치르셨습니다.
▶1990년대 말에는 췌장암이 걸렸죠. 지금은 괜찮습니다. 과거 전생에 남에게 잘못하고, 죽이기도 했나 보다라며 참회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수명이 길고 부자로 태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프고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과거 인과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인과응보라면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는 것 아닙니까.
▶불교는 숙명론이 아닙니다. 설사 안 좋은 인과라 하더라도 생각과 행위를 바꾸면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죠.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자살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집착을 버리는 게 쉽지 안잖습니까.
▶생각을 내려놓아야죠. 현대인들은 복잡한 현실을 한번쯤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돈이다 명예다 일체 복잡한 것을 내려놓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지죠. 깨끗하고 안정돼 있을 때 사물을 제대로 보게 됩니다. 참선은 불교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진리로 가는 길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진실하면 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덕담 한마디 해주십시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가치가 있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남을 속이지 않으면 어디에 있던,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될 것입니다.

 

 

매일경제   201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