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에 경매에서 팔렸던 서울 강남 한복판의 '유령 건물' 터가 유명 외국계 기업으로 가득 찬 2500억원대 일류 오피스 빌딩으로 되살아났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옛 나산백화점 부지에 들어선 지하 6층~지상 20층 규모 파로스빌딩이 그 주인공이다.
20일 낮 찾아간 파로스빌딩은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나온 건물 입주 기업 직원들로 북적였다.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과 바로 연결되는 지하 에스컬레이터와 주변 식당에도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오갔다.
↑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사거리에 있는 파로스빌딩. SK D&D가 옛 나산백화점 건물이 있던 땅을 1005억원에 낙찰받고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 옛 나산백화점 건물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느 강남 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이 일대는 5년 전만 해도 강남 논현동의 '흉물' 취급을 받았다. 입주하는 상업 시설마다 경영난과 각종 사고가 터지면서 문을 닫기 일쑤여서 "풍수가 나쁘다" "저주받았다"는 흉흉한 소문만 돌았다.
1983년 '강남 최초 백화점'이라는 것을 앞세운 영동백화점이 이 터에서 영업을 시작했지만 10년 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들어선 나산백화점도 IMF 때 나산그룹이 부도가 나고 1998년 건물 지하 기둥이 갈라지는 사고까지 겹치면서 결국 영업이 중단됐다.
그때부터 약 10년간 강남 한복판의 이 금싸라기 땅은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비행 청소년들만 주변을 얼씬거렸고, 건물은 계속 경매시장을 들락거렸지만 2007년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2007년 SK D&D와 리먼브러더스가 1005억원에 이 땅을 사들이며 불운은 끝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경매가 끝난 지 약 1년 만에 사업 파트너였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선 파로스빌딩에는 GE·퀄컴·랄프로렌코리아·파슬코리아 등 유명 외국계 기업이 잇따라 입주했다. 지난해 9월 준공 당시 이미 입주율이 90%를 넘겼다. 3.3㎡당 임대료도 8만~9만원 선으로 강남 테헤란로 못지않은 수준이다. 경매에서 1005억원이었던 건물 몸값은 2558억원까지 뛰어 작년 말 한 부동산투자신탁 펀드에 매각됐다.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10년간 유령 건물이 있던 터가 강남 한복판 금싸라기 땅으로 제 몫을 하게 된 데는 '외국계 기업 유치'라는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SK D&D는 2년여간 이 일대의 상권과 입지를 분석한 끝에 외국계 기업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데 성패를 걸기로 했다. 고급 패션 매장이 늘어선 청담동과 IT·전자 계통 기업이 밀집해 있는 테헤란로와 차로 5~10분 거리라는 점도 적극 활용했다. IT·패션 계통의 외국계 업체가 본사를 이곳에 두고 강남 일대를 오가기 편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다음은 외국계 기업 직원들이 만족할 만한 건물 공간을 만드는 일. 개발업체는 외국계 기업 직원들이 사무실에서도 공간을 여유롭게 쓰고 싶어하는 점을 감안, 빌딩 전용률을 강남파이낸스센터보다 높은 57%까지 높였고, 18~20층에는 정원으로 쓸 수 있는 테라스도 마련했다.
SK D&D 원성연 본부장은 "빌딩 가치를 높이려고 2년 가까이 국내에서 장기간 사업을 하고 있는 유명 외국계 기업 20여곳을 대상으로 유치전을 펼쳤다"고 했다.
그 결과 입주사들의 만족도도 높다. GE 문선의 이사는 "강남에 있는 주요 고객과 만나기 좋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고, 직원들이 출퇴근하기도 편하다"고 했다.
강남 일대 오피스 빌딩이 노후하고 거리가 복잡한 반면, 이 일대는 주거지역이 많아 혼잡하지 않다. 퀄컴 김승수 전무는 "복잡한 테헤란로 일대를 벗어나 한적하면서도 최신식 빌딩으로 옮겨 오게 돼 직원들의 만족감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201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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