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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강남 빌딩, 왜 비어가나

강남 테헤란로 모습.

국내외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한동안 끄떡없던 우리나라 오피스시장이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호황을 누렸던 강남권조차 텅텅 빈 빌딩이 늘어나면서 매매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아시아 주요 도시 중에서도 탄탄한 수요 덕분에 낮은 공실률을 자랑했던 서울 오피스시장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서울 오피스시장의 흐름부터 정리해 보자. 90년대 후반부터 GBD(Gangnam Business District·강남권) 지역을 중심으로 테헤란로, 강남대로의 오피스빌딩 공급이 급증하면서 강남 진입을 꿈꾸던 임차인 수요를 자연스럽게 맞춰 냈다. 이러한 임차인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2000년 초반부터 2004년까지 오피스빌딩의 평균 공실률은 자연공실률인 5% 이하에 그쳤다. 그러다 2003년부터 오피스빌딩의 추가공급이 시작되면서 테헤란로의 A급 빌딩인 강남파이낸스센터(옛 스타타워)와 교보강남타워, 포스틸 신사옥, 금강타워 등이 들어서면서 임차인 수급을 위한 ‘임차인 모시기 경쟁’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오피스빌딩의 공급부족 현상은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중소 벤처기업 지원과 맞물려 IT 산업 부흥을 일으키며 테헤란로의 1차적인 경기부양을 이뤄냈다. NHN, 다음, 엔씨소프트 등 우량 IT 업체와 대기업 계열사 등의 강남 이전을 유도했다.

또한 대기업 마케팅 부서의 강남 이동과 외국계 회사의 마케팅팀 이전 등은 강남의 임차수요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대형 로펌 등의 인수합병에 따른 규모 확장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부동산, 생명보험사를 포함한 이른바 금융산업(FIRE·Financial Insurance Real Estate) 관련 업종의 강남 집중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고, 외국계 제조, 유통, 투자금융업 등의 신규 이전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과거 삼성역 중심의 강남 오피스시장이 강남파이낸스센터의 안정적인 임차인 수급으로 인해 역삼역 주변 선호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내 생명보험 회사의 영업망 확대와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GBD의 프라임급, A급 빌딩의 공실률은 꾸준히 감소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04년까지의 오피스시장은 자연스러운 ‘임차인 시장’으로 이어져갔고, 테헤란로와 강남대로, 마포대로 등 오피스를 지어야 할 상업용 부지에 주거용 오피스텔과 같은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수익형 부동산 공급이 늘면서 주요 지역의 오피스 공급부족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공실률 하락은 2008년 중반기까지 공실률 1% 미만인 오피스 임대 환경을 만들어냈다. 경기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공급부족 현상이 만들어낸 특이한 경험이었다.

다만 이러한 오피스 공급부족에 따른 공실부족 현상은 생보사를 비롯한 금융 마케팅 오피스 공간이 늘어났을 뿐이고 제조, 설비, 건설, 전자, 장비업종 등의 확장을 통한 안정적인 임차수요가 아니라는 점이 다소 불안요소였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로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생보사의 영업조직 축소와 증권사 지점 통폐합 등이 일어났고 일부 외국계 생보사의 경우 지점 규모를 30% 이상 줄이거나 본사 빌딩으로 이전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2009년 현재 일부 생명보험사가 A급 빌딩의 공실해소에 꾸준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신규 사업을 창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생보사의 적정 임차요구 임대료는 과거 2004년 수준으로 급락했다고 판단될 정도다.

강남 빌딩 공실 느는 배경은?

사무실 규모 줄이고 구로·가산으로 이전


강남 빌딩에 공실이 늘어나는 요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임대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인상률을 보였던 오피스 매각가다.

연간 5% 내외로 임대료를 인상하는 투자용 오피스빌딩의 매각가가, 2004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평균 매각가의 20~30%를 넘는 높은 인상률을 보였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매입한 오피스빌딩의 3.3㎡당 임대료 상승률이 매입 이전 가격 대비 최대 30%를 넘긴 사례도 있다. 그 결과 올해 이후 현재 높은 임대료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는 업체들의 ‘탈강남’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과거 오피스 이전 시 가장 우선시됐던 ‘위치(Location)’가 이제는 대중교통 발달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됐다. 임대료 절감이 가장 절실한 시장으로 변한 것도 강남권 오피스 공실률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결국 강남의 B, C급 빌딩 임대료 조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 준공된 중대형 오피스빌딩의 경우 임차인 수급이 어려워 로스쿨 전문학원, 영어학원 등의 변칙적인 임차환경까지 나타났다.

셋째, 구로·가산 및 기타 지역으로의 임차인 이탈도 한몫을 차지한다. 과거 강남파이낸스센터에 자리 잡은 CJ인터넷도 구로로 이전하면서 비용절감 효과를 냈고 NHN의 분당 이전도 결과적으로 사옥마련과 비용절감 목적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그룹인 다음·NHN도 일부 부서가 구로·가산 지역에 오피스를 두고 있어 강남 공실의 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넷째, 기존 빌딩 내 면적 축소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임차면적의 일부분을 반환하는 사례다.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임대인이 ‘임차면적의 일부 반환’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임대차계약서를 살펴보더라도 ‘일부 면적 반환은 불가하다’는 내용이 문서화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기존의 사용면적에서 10~50%까지 ‘면적 축소’를 받아주지 않을 경우 임대차 계약의 ‘중도해지’를 통한 사무실 이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임차인과 임대인 간의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축소경영이 구조조정 등과 맞물리면서 임차인의 오피스 사용면적이 줄었다.

다섯째, 임차인의 중도해지에 따른 공실 발생이다. 과거 국내 기업의 일반적인 계약기간은 2년의 임대차 계약이었다. 그러나 현재 임대인들은 안정적인 임대수입을 위해 3년 또는 5년의 중·장기 계약을 선호하며, 중도해지 조항의 ‘삭제’ 또는 중도해지 시 높은 ‘위약금’ 조항을 삽입했다.

하지만 최근 임차인 수급을 경쟁적으로 실현하면서 생보사들의 주요 계약 조항인 ‘임대차 계약기간 내 3개월 전 통보로 위약금 없는 중도해지’가 가능해졌다. 갑작스런 경기 악화로 영업매출이 급감하게 되자 생보사들의 중도해지 및 규모 축소가 가시화된 셈이다. 이는 현재의 대규모 공실사태의 하나의 변수로 작용했다.

전망은?

A급 빌딩 임차인 수요 꾸준할 듯


지금은 사정이 어렵지만 전망은 낙관적이다. A급 빌딩에 대한 임차인 수요는 꾸준히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3년 강남파이낸스센터가 오피스시장에 나왔을 때 주변 평균 임대료보다 20~30% 이상 비싸다는 이유로 임차인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재 삼성서초타운과 메리츠증권빌딩 등 신축 및 A급 이상 빌딩의 경우 임차인의 요구와 맞아떨어져 고가 임대료 지급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비싸더라도 한 개 층 면적이 크고 활용도가 높은 빌딩의 임차 수요가 과거보다는 많아졌다는 얘기다.

서울 오피스시장은 아시아의 주변 국가에 비해 임대료 인상률이 턱없이 낮지만 전세시장에서 월세시장으로 변경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환경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임대시장 생성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도 국내외 투자자가 소유하지 않은 오피스빌딩에 대해서는 일부 보증금 비율을 높게 책정하는 경우도 있고, 가격조정에 따른 임차인 선호도가 높은 빌딩은 어려운 시장상황에서도 임차인 수급에 어려움이 없다.

특히 아셈타워, 도심공항타워 등은 임차인 수요가 꾸준하다. 임차를 원하더라도 공실 발생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입주를 예약하는 경우가 있다.

올 하반기 전망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면, 현재 강남의 A급 빌딩 공실률은 2.62% 수준이다. 예정공실까지 포함한다면 6%대로 2분기까지 유지되거나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위험한 것은 보험 업종 규모가 줄어드는 한편 점포 폐쇄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4분기부터 오피스시장에서 새로운 임차인의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분명 3분기부터 임차인 이전에 대한 요구가 발생할 것이고 오피스 시장 역시 분주해질 것이다.

기업의 규모 축소가 2분기까지 꾸준히 나타나고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과 기대심리 등으로 빠르면 3분기부터 경기회복세와 맞물린 오피스시장 활성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윤여신 CBRE 이사]

 

매일경제  2009.04.11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01호(09.04.1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