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窓)/-. 아름다운 世上

박찬종 “다들 피하니 어째…인권변호사인 내가 맡을 수밖에”

‘무균질 인간’임을 강조하며 우유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던 박찬종 변호사. 독일병정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깨끗한 정치를 역설하던 정치인 박찬종의 참신한 이미지를 좋아했던 이들조차 요즘은 그의 행보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명호 교수, BBK사건의 김경준, 미네르바 박대성, 박연차 회장까지 떠들썩한 시국사건에는 모두 그가 변호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불의를 보면 못참는 인권변호사로서의 당연한 행동이라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혹시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신호가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박찬종 변호사는 올해 만 70세이지만 이회창 총재를 비롯, 정치도 고령화되는 풍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판에서 왕따를 당한 나는 다시 정치를 할 생각도 없고, 정부와 연관되거나 정권을 겨냥한 사건은 ‘돈만 밝히는’ 대형 로펌들이 맡지 않아 나 같은 인권변호사가 변호를 맡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도 민감한 사건마다 변호를 도맡아 대중들은 “또 박찬종 변호사야?”라는 의문을 갖습니다. 혹시 매스컴에 매번 등장해야 안심되는 성격이어서 그런 건 아닌지요. 어르신 앞에서 죄송한 표현이지만 언론계에선 이런 걸 일종의 매스컴 중독이라며 속어로는 ‘언론 뽕’이라고도 부릅니다만….

“내가 요즘 미네르바, 박연차 회장 사건 등으로 매스컴에 많이 소개되긴 했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미네르바나 김경준은 정권을 향해, 김명호 교수는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쏜 사람입니다. 이런 사건을 그 유명한 로펌 김앤장에서 맡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굵직한 법무법인이 맡을까요. 그 사람들은 그저 돈만 보고 사건을 맡을 뿐이거든요. 김경준의 경우는 어머니가 아내의 여고 선배이고 김 교수도 처가쪽과 인연이 있어 사건을 맡게 되었고, 박연차 회장은 동향 출신으로 1995년엔가 처음 만났는데 서울구치소에 다른 의뢰인들을 면회갔다가 만나서 그날로 백지 한 장에 변호사 수임을 한다는 글을 적고 시작한 겁니다. 저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제가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마치 제가 독불장군이고 언론에 이름을 내기 위해 나섰다고 보고 있는데, 그건 정말 억울합니다.”

-미네르바 박대성씨 경우엔 그런 인연도 없잖습니까.

“지난해 11월 초 법무부 장관의 국회 발언이 계기가 됐습니다. 김경한 장관이 ‘필요하다면 미네르바를 조사하겠다’고 국회에서 답변하는 걸 보고 ‘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겠구나’ 싶어 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 글을 찾아 읽어봤죠. 그 이후 1월7일 미네르바가 체포될 때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제가 아고라에 글을 올렸습니다. 대표적인 게 ‘혹세무민의 죄인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글인데, 죄는 정부에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저도 인터넷에 수시로 글을 올리는 ‘인터넷 논객’이니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고요.”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박연차 사건과 관련해 의뢰인을 접견하고 곧바로 기자간담회를 여는 것에 대해 언론플레이라고 비난했고,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도 변호사 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는데요.

“우리나라는 검찰의 권한은 크지만 피의자의 권리는 정말 약합니다. 검찰과 경찰의 브리핑 제도를 봅시다. 경찰은 ‘장자연 리스트’를,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를 거의 매일 브리핑하는데 이거 다 ‘피의사실공표죄’로 징역 3년 이하 감입니다. 이게 공인되고, 해당 법률이 사문화된 것은 언론, 즉 국민의 알 권리 때문이죠. 지금 브리핑이 관행화돼서 그걸 당연한 절차로 보고 있는데, 당연한 게 아닙니다. 형사소송법은 경찰, 검찰과 피의자에 대해 대등하게 공격하고 방어하는 당사자 대등주의를 밝히고 있는데도 검찰은 피의자 조사를 하고 브리핑을 하면서 ‘그가 이렇게 진술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합니다. 그런데 피의자가 그렇게 진술 안했을 수도 있거든요. 제가 주장하는 것은 피의자 쪽 브리핑도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미국을 보세요, 우리 언론도 미국 감옥에 있는 BBK 김경준을 만나 인터뷰하지 않았습니까.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 언론에 말할 기회를 줘야 한단 말입니다. 검찰은 반듯한 브리핑 룸에서 다 이야기하고 피의자들은 검찰청 출입구, 혹은 감옥으로 가는 버스에 타기 직전에 아주 잠깐 언론에 이야기할 수 있어요. 유죄 확정까지는 ‘무죄 추정’인데, 검찰의 일방적 브리핑에 피의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박연차 회장이 ‘매일 언론을 통해 얻어맞으니 억울해 죽겠다, 지은 죄만큼 얻어맞아야 하는데, 그 이상이다’라기에 언론을 통해 알린 겁니다. 제가 박 회장을 만나 언론에 공개한 것은 실상 검찰 수사를 도운 셈입니다. 그리고 박 회장의 경우엔 제가 변호사라기보다는 컨설턴트 역할을 합니다. 어느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다 털어 놓으라’고 말합니까. 무조건 유리하게 적당히 감추고 포장하라고 하지. 전 모든 걸 다 털어놓으라고, 털고 가자고 했어요.”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엔 무죄를 예상못해 항소 준비도 하셨다던데….

“심정적으로야 무죄가 확실한데, 과연 무죄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있었죠. 몸은 풀어주되 죄는 인정하는 쪽으로 판결을 하지 않을까, 혹은 징역 8월 정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안정국이란 말이 나올 만큼 살벌해지고 특히 촛불집회 이후, 인터넷에서 글 쓰는 사람까지 구속하게 됐는데 이런 흐름에 법원이 제동을 걸어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봅니다. 사실 미네르바의 경우 적용 법조인 전기통신기본법 47조는 누가 봐도 잘못 적용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무죄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어요.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박경신 고려대 교수 등이 증인으로 참여해 범죄사실이 객관적이라고 하더라도 이 법 적용은 할 수 없고, 위헌 소지가 있다고 증언한 것도 무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제가 맨 마지막 변론에서 재판장에게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사법부에는 유권무죄, 유전무죄의 풍토가 있고, 특히 정권과 관련된 시국사건에는 법관이 소신껏 판결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소신대로 판결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데, 이건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니 용기라는 것을 가질 필요도 없이, 소신껏 판결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재판장을 불신한 것에 대해서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재판장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 사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BBK의 김경준씨도 의뢰인이었는데 요즘 어찌 지냅니까.

  

“판결을 받고는 거의 패닉 상태였죠. 미국에서도 감옥에서 한 3년 살았는데 한국에서도 10년에 150억원을 선고받았으니…. 저는 그가 억울한 것을 알기에 대법원까지 갈 것을 주장했지만 그가 ‘변호사님, 저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래요, 한때 인연을 맺고 사업을 도모했던 청년인데 그렇게 모른척할 수 있는지…. BBK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이 모두 승진하고 출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권력의 하수인이 된 검찰이며 돈버는 일에만 혈안이 된 변호사들이 나라를 망치는 죄인들입니다.”

-모든 사건을 무료로 맡으면 생활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모두 무료는 아닙니다. 그리고 선후배들의 회사에서 법률 고문을 맡아 생활비는 나옵니다. 제가 5년 전부터는 자동차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자가용도 팔아서 주말엔 아내 차를 얻어 타고 좀 좋은 차를 타고 가야 할 자리에는 모터풀 제도로 자동차를 수배해 얻어 타고 다닙니다. 이번 주말에도 원주에 결혼식이 있는데 한 후배의 차를 빌렸어요.”

-매스컴이나 주변에서 가장 오해받는 점은 뭐고, 뭐가 제일 억울합니까.

“첫째는 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큰 시국사건만 맡는다는 것입니다. 전 억울한 의뢰인의 사건은 가리지 않고 맡으려 합니다. 얼마전에도 여관을 하는 할머니가 성매매 혐의로 기소되었기에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또 제가 마치 철새처럼 여기저기 당을 옮기거나 아직도 권력에 연연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겁니다. 저는 1970년대 말부터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고, 이후엔 신한민주당, 민주당, 국민당, 신한국당, 민주국민당 등에서 정치인의 삶을 살았지만 당이 이름을 바꿨을 뿐이고 제가 구걸하며 권력을 얻은 적은 없습니다. 저는 수십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자리하는 한승수 총리와는 다릅니다.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해 과거 대통령들이 저와 인연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과는 그야말로 ‘우리가 남이가’ 하는 사이지만 그들이 권하는 꽃가마를 탄 적이 없습니다. 항상 제 목소리를 내다보니 왕따를 당하긴 했지만요.”

-변호사이면서 유난히 변호사들에게 불만이 많으시군요.

“변호사는 단순한 대리인이 아닙니다. 변호사는 자존심을 갖고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하고, 사건을 위임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력은 하되, 결국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공익적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변호사들은 그런 의무를 다 버리고 돈만 추구합니다. 대형 로펌 소속 후배 변호사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돈(수임료)을 적게 받거나 안 받거나 하는 등의 법률구조 사업에 평소 노력의 3~5% 정도만 기울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게 양심 있는 일이죠. 삼성특검이니, 현대차사건이니,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이니 하는 돈 되는 일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제발 변호사로서의 도리도 찾으라는 겁니다. 변호사의 배금주의와 정도를 망각한 전관예우 등도 바뀌어야 합니다. ‘부자들의 법조계’ ‘권력의 시녀 법조계’, 이런 말들이 생긴 바탕에는 변호사도 일익을 담당했다고 봐요.”

박찬종 변호사는 청년처럼 열변을 토했다. 어떤 일이든 관심가는 일에 달려가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그의 건강비결인 듯했다. 무료 변론을 맡은 그의 지갑 사정이 걱정되어 커피값을 내려 했으나 그는 청년처럼 재빨리 계산서를 집어들었다.

<글 유인경·사진 김세구기자>

 

 

경향신문  2009.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