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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고단한 삶… 빛나는 기부(봉천동 70대 할아버지 2억 전 재산 서울대 기탁)

無學의 70代, 서울대에 2억원 쾌척
택시기사·고철수집하며 평생 모아

 

21일 오후 서울대 총장실. 흰색 남방에 양복바지를 입은 70대 남자가 불쑥 찾아왔다. 총장실 직원들이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자 그는 “총장님을 뵙고 장학금을 전달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장무(李長茂) 총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타나자 그는 흰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1억원짜리 수표 두 장이 들어있었다. 이 봉투를 전달하면서 그는 “돈이 적어 부끄럽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을 놀라게 한 주인공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김영업(金永業·75)씨다. 그는 “배우지 못해 서러움이 컸는데 최고 대학인 서울대에서 더 많은 인재가 나오는 데 보탬이 될까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사태를 알아차린 이장무 총장이 김씨를 향해 “어떤 기부금보다 소중하고 귀중한 돈으로 여기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쓰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총장은 또 김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발전기금 안에 ‘김영업 장학금’이란 별도 계좌를 만들어 장학사업에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총장실을 방문하자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 겨우 몇 마디 건네면서 “얼마 안 되는 돈”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렇게 (기자들이) 올 줄 알았으면 봉투만 놓고 가는 건데….”

 

김씨는 스스로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고 했다. 서른 살에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을 떠난 김씨는 인천, 서울 영등포와 봉천동 등에서 45년간 객지생활을 했다. “한글만 깨쳤지 수학은 하나도 몰라요. 직장생활 할 처지가 안 됐지요.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고철(古鐵)도 수집해보고 택시도 몰아보고 꽃도 재배해 팔고 안 해 본 일이 없었지요.”

평생 동안 그는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쓸 줄도 몰랐다. 여행이라야 지난 1998년 난생 처음 제주도를 다녀온 게 고작이었다.

평생 아끼고 또 아끼며 돈을 모아왔으나 그의 아내는 2년 전 세상을 떴다. 슬하에 자식도 없다. 조카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봉천동에 오피스텔을 얻어 혼자 산다.

그는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 때까지는 혼자 살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는 서울대에 제가 모은 돈을 모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들어오는 곳인데 저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서요. 최근 조카들과 친지들에게 ‘내가 모은 돈 모두를 서울대에 장학금으로 내놓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결심을 실천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김씨가 전달하는 돈은 수백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이라며 “돈 몇 푼에 부모자식 간에도 비정(非情)이 난무하는 세상에 김씨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장무 총장이 관용차를 타고 가라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라도 배웅하려 하자 김씨는 이 총장을 밀치며 서둘러 총장실을 빠져나갔다. “바쁜 분들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학교 구경이나 잘 하고 갈 테니 어서 가서 일보세요.”

 

조선일보 200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