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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두 다리 잃고도 암소 50마리 길러내


‘장애인재활상’ 받는 김용국씨

1일 오후 충북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 ‘성중농장’. 휠체어를 탄 김용국(56)씨가 포대에서 사료를 퍼서 암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잘 먹고 튼실한 새끼 많이 낳거라.” 교통사고로 대퇴부 아래 두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 1급의 중증 장애인이지만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김씨는 2일 한국교통장애인협회가 서울 88체육관에서 벌이는 ‘장애극복 재활증진대회’에서 ‘장애인재활상’을 받는다.

 

사고가 난 것은 1982년 1월 1일. 농한기 동안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하다 설 휴가를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김씨는 과속으로 달리던 12? 트럭에 깔렸고 정신을 잃었다. 사흘 만에 의식을 회복한 김씨는 휑한 아랫도리를 보며 절망했다.

김씨의 아내 원영자(53)씨는 “남편은 사고 후 2년 동안 폐인처럼 살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과 왕래도 딱 끊고 술로 살더군요. 초등학교 다니던 열 살짜리부터 아래로 주르륵 딸만 넷이 있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죠. 이 사람 아들을 낳은 뒤 확 달라졌어요.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물더라고요.”

몸을 많이 써야 하는 농사일은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축산일.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에는 개를 키웠지만 한꺼번에 60여 마리가 병으로 폐사하며 돈만 날렸다. 10여 년 전부터는 한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료값도 건지지 못하던 ‘소값 파동’ 시절에는 1억여 원을 날리며 ‘운명’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키우는 암소만 50여 마리에 달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200여 평 우사(牛舍) 주변의 땅을 휠체어가 다니기 편하도록 판판하게 시멘트로 발랐지. 소 배설물을 거름으로 쓴다고 대신 걷어가고, 생각보다 힘들 일이 없어요. 마음이 중요하다니까요.”

1996년 큰딸을 시집 보낼 때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예식장에 들어설 자신이 없어 남 몰래 술 한 잔 먹었다는 아버지는 휠체어를 밀고 당당히 입장하는 딸을 돌아보며 가슴이 터질 듯했다고 했다.

“장애는 남들에게 무시당할 이유가 아니다”라는 것이 김씨의 지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싹부터 도려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방구석에서 뒹굴다 돈 떨어지면 아는 사람들 찾아다니며 손이나 벌리게 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마음 독하게 먹고 악착같이 돈을 버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일보 200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