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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대장암과 싸우려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맨'



▲ 암과 싸우는 몸으로 1500㎞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장을 낸 강준성씨가 21일 출발점인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살기 위해 뛰고, 뛰기 위해 삽니다.”

추석을 앞둔 21일 서울 시청앞. ‘공명선거 기원 제1회 대한민국 일주 울트라 마라톤’ 출발선상에 선 강준성(56)씨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고쳐 묶었다.

16박 17일간 1500㎞를 달리는 국내 초유의 대장정에 도전한 21명에 포함된 강씨는 7년 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지만 “1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던 당시 의사들의 말은 이미 빗나갔다. 그는 6년째 전국 곳곳의 대회에 참가하며 울트라 마라톤을 계속하고 있다. 그간 100㎞를 15번 완주했고, 3년 전엔 서울 시청부터 속초까지 314㎞를 67시간에 완주했다.

이날 또 다른 도전에 나선 강씨의 표정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옆의 동료가 “인간 승리예요. 우리 형님 정말 대단하죠”라고 거들자 강씨는 “뭐, 그냥 뛰는 거죠”라며 웃었다.


7년 전 충주에서 목수 일을 하던 강씨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은 뒤 6개월에 걸쳐 세 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다 죽어 병원을 나왔었죠. 정상적 배변 기능을 상실해서 장애 5급 신세가 돼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었죠….” 강씨는 그때 일을 회상하다 눈물을 글썽였다.

“농사를 짓다가 충주 시내로 나와 사업을 했지만 잇단 실패로 가정 형편까지 말이 아닌 상태였어요. 게다가 암 말기라니…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었죠.”

모든 것을 포기했던 강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수술받은 지 10개월쯤 지난 뒤였다. 한 목사로부터 ‘포기하는 자는 가장 미련한 자’라는 말을 듣고 “1㎝라도 움직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엔 집 앞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세 바퀴를 돌았어요. 사실 뛴 게 아니라 몸을 질질 끌며 걸었지요. 그 후 3일을 못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앓고 나니 몸이 조금 가뿐해진 듯한 거예요. 다음엔 충주 호암지 2.6㎞를 한 바퀴 돌아봤죠. 이틀을 또 못 일어났습니다. 오기가 생기더군요.”

이때부터 강씨는 6년 동안 틈만 나면 달렸다.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그는 일부러 더 세게, 더 많이 달렸다.

“새벽에 너무 아파 잠에서 깨면 그 길로 나가서 호암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비가 와도, 날이 꽁꽁 얼어도 무조건 달렸어요. ‘암(癌)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 보자’는 심정으로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강씨를 말리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딸은 아내에게 “아빠를 어디 좀 가둬 놓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강씨는 “달리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 없어진다”며 “자연을 마시면서 달리는 데 집중하다 보면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악착같이 달린 덕택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그는 죽음과 맞서겠다는 의지로 등 번호도 ‘1444’로 정했다.

마라톤 동호인들이 개최한 이번 1500㎞ 울트라 마라톤은 서울을 출발해 통일로·연천을 지나 강원도?부산?목포?서해안?인천을 거쳐 10월 7일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대장정이다. 하루에 약100㎞씩을 달려야 하는 혹독한 레이스여서 26일 현재, 21명의 참가자 중 부상 등으로 5명이 탈락했으나 강씨는 500㎞를 돌파해 씩씩하게 달리고 있다. 강씨는 “나처럼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암 환자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대장암과 싸우며 15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강준성씨

2007년 9월 27일 (목)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