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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8년간 재소자들에게 그림과 삶을 가르친 여의사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8년여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이제 잠깐 멈춰 섰습니다. 이번 전시가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전시가 됐습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많은 공부와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저희들이 청송교도소에서 공부하는 동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봐주신 분들이 더 많았었기에 무사히 끝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청송교도소에 복역중인 장기수들의 미술작품 전시회를 개최해온 의사 겸 화가 강신영(59) 박사가 10월31일부터 6일까지 서울 관훈동
경인미술관에서 ‘백야(白夜)’라는 타이틀로 마지막 전시회를 열면서 남긴 말이다. 전시는 올해 제6회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시원섭섭합니다.”

강 박사의 첫 마디다. 하얀 밤을 지새우며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뜻의 미술반 ‘백야’를 2000년 청송교도소에 개설한 이래 8년여를 재소자들과 동고동락 해왔다.

강 박사가 청송교도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캐나다로 이민했다가 1997년 역이민한 후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부터다. 99년 말 우연히 청송교도소장과 만나면서 미술반을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취미 차원으로 할 계획이었지만 미술반을 운영하면서부터 전념하게 됐다”며 웃었다.

재소자들에게 전념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약속’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시작할 때 재소자들에게 ‘너희들이 말을 잘 듣고 따라와 준다면 나는 끝까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동시에 가장 힘들었던 점이 바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보람보다는 그들과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뿌듯한 이유다.

캐나다 거주 당시 호랑이 사진과 그림 작업에 심취했던 그녀는 “취미생활로 시작했던 일”이라고 겸손해 했다. “재소자를 상대로 미술반을 만들었지만 나도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과 오래 하다 보니 미술을 보는 눈이 조금씩 생기더라.”

강 박사는 처음 교도소 미술반에서 함께할 재소자를 선별할 때 미술에 백치인 사람만 뽑았다. 미술을 조금 안다고 거드름을 피울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미술공부보다는 인성교육에 치중했다. 미술은 20%, 나머지 80%는 인성교육이었다.

40명으로 출발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인원은 10명에 불과했다. 강 박사는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면 예외 없이 제외시켰다고 했다.

2002년 첫 전시회 이후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친 전시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은 7000만~8000만원 정도다. 작품 판매 값이다. 이 돈은 재소자들의 통장으로 들어갔다. 강 박사는 “한 사람이 700만~800만원 정도 가져갔고 많이 모은 사람은 1000만원 정도 됐다”고 귀띔했다.

강 박사 몫은 한 푼도 없었다. 오히려 재소자들을 위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그렇게 들어간 돈만 돈만 3억원에 이른다. 미술재료와 각종 미술서적 구입, 전시회 비용 등을 사비로 충당한 탓이다. “젊었을 때 모아놓은 돈”이라며 웃었다.

“10명 중 6명이 출소했고 곧 한 명이 나온다. 출소자들을 위해 경기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언제든 미술작업을 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백야’ 전시회는 끝나지만 그들과의 연은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경희대 의대와 고려대 의과대학원(의학박사)을 졸업하고 87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강 박사는 내년에 본업으로 돌아간다.

80년부터 약 10여년간 서울에서 산부인과의사로 일했던 그녀는 “내년 말께 가정의학과의원을 개원할 것”이라며 “출소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는 병원”이라고 소개했다. “주로 몸에 새겨진 문신을 제거해줄 생각이다. 병원 이름도 ‘백야’로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거 소문나면 일반 사람들은 안 올 것 같은데…. 출소자들을 상대로 한 병원인데 어디 무서워서 오겠나. 하하.”

 

2007년 11월 7일 (수)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