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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서울역 노숙인들의 ‘형님’

 

▲ 서울역 일대 노숙인들이‘형’처럼 의지하고 있는 남대문경찰서 장준기(47·오른쪽) 경사. 11일 밤, 이곳을 찾은 장 경사에게 한 노숙인이 캔커피를 건네고 있다. /류정 기자

“준기 형님, 어디 갔다 왔어요?”

“준기 형, 어제 자장면 고마웠어요.”

“형, 이 자식이 자꾸 때려요!”

지난 11일 밤 11시쯤,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 군데군데 모여 있던 노숙인들이 ‘그’가 나타나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역 일대를 ‘숙소’로 삼고 있는 노숙인 300여 명이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그’는 바로 남대문경찰서 서울역지구대 장준기(47) 경사. 176㎝·95㎏ 체구에 태권도 5단인 장 경사는 하얀 제복을 입고 참수리 마크가 달린 모자를 쓴 깐깐한 경찰관의 모습이지만, 노숙인들은 그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한 동네 형을 만난 듯,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알코올 중독인 노숙인 A(50대 중반)씨는 장 경사에게 다가가 “내 얘기 좀 들어봐. 아까 경찰한테 불려갔는데 말이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장 경사가 그를 겨우 달래고 있는 사이, 근처에 있던 40대 노숙인이 달려왔다. “형님, 쟤들 좀 혼내줘.” 노숙인 3~4명이 벌여놓은 술판에서 한바탕 싸움이 난 것. 장 경사가 뛰어가 “자꾸 이러지 마, 좀!” 하고 소리치자 5분 만에 술판이 조용해졌다.

장 경사가 서울역 광장·대합실·지하보도 등에서 “아픈 데는 없어?” “밥은 먹었고?” “술은 끊었나?” 하며 노숙인들을 돌본 지가 8년째.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굶었으면 밥을 먹이고, 그들이 취업이나 상담, 파산신고 등을 원하면 쉼터나 복지시설을 소개해준다. 출근 전, 퇴근 후에도 일터(서울역 일대)에 남아 노숙인들과 함께 지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노숙인 50여 명의 사진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주로 여성 노숙인 사진이다. “여성들은 성폭력 등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지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쉽게 볼 때마다 찍어 놓은 겁니다.” 장 경사는 1~2년 간격으로 있는 인사 이동 때마다 “이곳에 남고 싶다”고 했다. 노숙인에 대한 그의 ‘관심’이 유별나자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2월 그를 아예 ‘노숙인보호팀장’으로 임명했다.

서울역 주변 상점 10여 곳은 “노숙인들이 술을 먹게 해선 안 된다”는 장 경사의 설득에 못 이겨 술을 아예 팔지 않는다. 서울역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 경사와 기자에게 한 노숙인이 어디서 났는지 캔 커피 2개를 건넸다. 그는 “나는 형님이 참 좋다. 형님 덕분에 살 의지도 얻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200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