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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삶)/-. 성공경영

역사속 성공한 2인자는 "멀리 보되 한발짝 물러났다"

 

사회주의 중국을 만든 마오쩌둥(왼쪽)과 41년간 부동의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

 

 

성공하는 기업의CEO나 정치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공하는 조직을 이끄는 견인차가 1인자라면 `핵심가치`라는 엔진을 얹고 뛰어난 통찰력과 결단력, 품성 등의 바퀴를 달아야 한다. 이 중에서 2인자는 하나의 바퀴다. 당장에 눈에 띄지 않지만 바퀴 하나가 없으면 차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장량 없는 유방` `정도전 없는 이성계` `순욱 없는 조조`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기업이나 공공조직의 성공을 이끌기 위한 2인자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말 그대로 `2인자를 잘 둔 자가 곧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되는 셈이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박정희와 김종필

20세기 세계사를 장식한 2인자 중 대표적인 이는 사회주의 중국을 만든 마오쩌둥의 2인자 저우언라이다. 1949년 10월 중국인민공화국 건국으로부터 26년 4개월에 걸쳐서 총리로 재직했던 그는 1934~1935년에 걸쳐 진행한 대장정(大長征) 과정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지도권이 확립된 준의(遵義)회의로부터 41년 동안 부동의 2인자였다.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마오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1인자로서의 역량`은 마오가 낫다고 판단해 그에게 홍군 사령관 자리를 양보하는 결단을 내리고 스스로 2인자가 됐다.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고 유학파로서의 뛰어난 국제감각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 2인자로는 김종필이 꼽힌다. 처삼촌인 박정희와 함께 5ㆍ16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던 그는 유신말기였던 1978년에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로 JP를 세우는 방도를 연구하도록 했을 정도다. 때로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척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철권통치자의 완충역과 견제역을 맡았고, 민주화 이후 심지어 박정희의 대척점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마저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2인자`가 됐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이건희와 이학수

최근 `버핏세` 논란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곁에도 일곱 살이나 많은 2인자 찰리 멍거가 있다. 멍거는 1959년 30대 중반에 버핏을 처음 만나 버크셔 해서웨이에 합류했고 그와 공식적으로 인연을 맺은 이후 2인자 자리만 35년째 지켜오고 있다. 그는 버핏이 마이크를 넘겨주기 전까지 먼저 말하지 않고 버핏에게 지속적인 조언을 해주는 파트너다. `중요한 투자결정은 다 멍거의 아이디어`라고 할 정도다.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에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리더로 부상한 삼성의 성공도 이학수라는 2인자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인자를 만든 2인자들`의 저자 이철희는 그의 책에서 "1993년 신경영 선언 직전 큰 위기감을 느끼던 이건희 회장이 택한 사람이 이학수였다"며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삼성이 1위 기업 자리를 확고히 할 때에도 이학수가 구조조정 본부장이었다. 이때부터 이건희 회장은 이학수를 총체적 2인자로 활용하게 된다"고 썼다.

그는 "이학수는 꼼꼼한 통계를 바탕으로 게임을 운영하는 야구감독 스타일"이라며 "위기관리 측면에서 이런 점이 탁월하게 발휘돼 지금의 삼성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201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