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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삶)/-. 성공경영

`맥가이버 칼` 로 유명한 100년기업 빅토리녹스 칼 엘스너 회장

 

9·11테러 불똥에 회사 휘청…그래도 `스위스 가치` 지켜내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팔라초 델 프레도(Palazzo del freddo)`, 세계적인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Michelin)`, 스페인에서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로에베(Loewe)`.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100년이 넘는 장수기업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기업의 평균 수명 10년, 포천 선정 500대 기업 평균 수명이 40년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진시황처럼 `무병장수`를 꿈꾼다. 기업도 그렇다. 그들은 `우량장수`를 꿈꾼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위험 요인을 극복하며 초우량 체질로 탈바꿈한 기업은 단명하는 기업들이 가질 수 없는 탄탄한 기업이념과 고유의 기업문화를 얻게 된다. 모든 기업이 열망하는 `100년 기업`의 꿈. 이는 신세계그룹이 1월 10일 열었던 워크숍에서 얘기된 `올해의 화두`이기도 했다. 워크숍에서는 정용진 부회장 등 그룹 임원 120여 명이 참석했다.

 

신세계그룹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스위스에서 포켓용 칼을 제조하는 `빅토리녹스(Victorinox)`를 선정했다. 빅토리녹스라는 회사명만 들으면 다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빨간 케이스에 흰 십자가가 박힌 `맥가이버 칼`이라고 말해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로 우리에게 더 유명한 빅토리녹스는 1884년 설립돼 12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4대째 가업승계로 장수기업을 실현시킨 명성 높은 기업이기도 하다.신세계그룹은 빅토리녹스가 `고객 중심적 사고` `직원 만족도 증대` `지역사회와의 공존` 등 3각 체제의 핵심 가치 실현을 통해 장수기업이 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빅토리녹스에는 단순히 장수기업 차원을 넘어서 스위스의 정체성이 깃든 가치가 담겨 있다.


매일경제 MBA팀은 빅토리녹스의 장수 비결이 한국 기업들에 `100년 기업`으로 가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빅토리녹스의 칼 엘스너 회장을 인터뷰해 빅토리녹스가 100년 넘게 장수하며 스위스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비법에 대해 들어봤다.

-빅토리녹스의 포켓용 칼은 한국인에게 `맥가이버 칼`로 잘 알려져 있다. 맥가이버와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노력했나.

 

▶우리가 먼저 제품 홍보를 위해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에 광고를 부탁한 적은 없다. `맥가이버 칼`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 우리 제품이 사용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우리 제품이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게 된 것에는 영화 제작자와 배우들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우리 제품을 `필수품(must have item)`인 것처럼 여겨 항상 소지했던 것이 관객들에게 좋게 다가간 것 같다.

당시 영화에서 우리 제품이 위기를 극복하는 만능 아이템처럼 다뤄지면서 매출액이 30~40% 증가했다.

-빅토리녹스의 제품은 뉴욕 현대예술 박물관(Museum of Modern Art)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돼 있을 정도로 역사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특별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혁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직원들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문화를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실용성과 디자인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매우 특별한 제품이다.

우리는 제품을 디자인할 때 어떤 기능의 툴이 어디에 들어가면 좋을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고려한다. 최상급 철만을 사용해 각 부품을 제작하며 그 재질이나 완성도가 우리 기준에 맞는지 철저하게 검사한다. 그리고 매니저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각 프로세스에 참가하여 제품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함께 논의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실용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최고의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전 직원이 함께 정성을 쏟아 만든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100여 년 세월에 걸쳐 스위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시대를 뛰어넘어 고객의 삶과 밀착된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빅토리녹스의 역사에 대해 얘기한다면.

▶세계 최고 스위스 아미 나이프 제조사의 이름이 처음부터 `빅토리녹스`였던 것은 아니다. 본래 1884년 설립 당시 회사명은 설립자 칼 엘스너 1세의 이름을 딴 `엘스너 나이프사(Elsener Knife Company)`였다. 그러다 190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칼 엘스너 1세는 그를 기리기 위해 회사 이름을 빅토리아(Victoria)로 바꿨다. 그 이후 1921년, 제품에 철강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철강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inox`를 붙여 빅토리녹스(Victoria+inox)로 회사명이 굳어지게 됐다. 빅토리녹스는 2009년 125주년 행사를 치렀다.

-1884년에 창립돼 128년 동안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해왔다. 어떻게 장수기업이 될 수 있었나.

▶고객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공의 길이 열린다는 기본 원칙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빅토리녹스는 실용적이면서도 최고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우리 제품은 고품질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해 내구성이 좋기로 유명하다. 혹자는 우리에게 제품 내구성이 좋으면 판매가 줄어 매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다는 것은 우리 제품이 최고의 품질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만일 성장과 지속성 중에 더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지속성을 고를 것이다. 우리는 고객이 기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며 고객과 함께하는 `삶의 동반자(Your companion for life)`를 브랜드 가치로 추구하고 있다.

-1945년 이후 빅토리녹스의 맥가이버 칼이 미군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것이 빅토리녹스가 해외로 진출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닌지.

 

▶2차 세계대전 후에 빅토리녹스는 스위스 동맹국의 PX 상점에 포켓용 칼을 공급했다. 미군에 직접 우리 제품을 공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군이 PX 상점에서 우리 제품을 구입해 기념품처럼 집에 가져가면서 널리 퍼지게 됐다. 이때 미군이 우리 제품을 `스위스 아미 나이프`라고 간략하게 부르면서 그 이름이 정착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제품은 유명세를 타게 됐고 1945년 이후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 우리는 제품 생산의 90%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전 세계 130개 나라에 빅토리녹스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빅토리녹스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해외에 공장을 짓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비용 절감 측면에서 개발도상국이 더 유리하지 않나.

▶우리는 스위스에서 만든 제품만이 스위스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말 그대로 스위스의 가치와 역사를 담고 있는 스위스 대표 브랜드 제품이다. 이 작은 포켓용 칼이 해외에서 스위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이 제품을 해외에서 생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2005년에 `스위스 아미 나이프` 제조업계의 오랜 경쟁사 벵거(Wenger)를 인수했다. 인수ㆍ합병(M&A)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우리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제품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또 다른 공식 공급 업체인 벵거의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 M&A를 결정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스위스의 가치가 담겨 있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해외에서 생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벵거는 1908년부터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생산했으며 2005년 M&A 전까지 `진품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주창하며 우리와 경쟁해온 기업이다. 벵거의 등장으로 우리는 `원조 스위스 아미 나이프`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벵거를 인수하면서 100여 년 동안 함께 성장하고 경쟁했던 두 브랜드가 한 지붕 아래에서 발전을 도모하게 됐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시계 등 다른 카테고리 제품에 진출했다. 왜 다각화를 시도했는지. 시너지 효과는 있었나.

▶기업 역사를 떠올려보면 답이 나온다.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전념하는 것만큼 위험한 투자 판단도 없다. 그리고 고객들 사이에서 맥가이버 칼처럼 스위스의 정체성이 깃든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을 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빅토리녹스의 사업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하고 고객의 또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우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계는 칼처럼 정교함을 필요로 하고 `스위스의 가치`를 보일 수 있는 전형적인 제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음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대중적인 취향에 맞춰 공급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고급스러운 시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것이 빅토리녹스의 뿌리,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지닌 핵심 가치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정체성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빅토리녹스는 전문 매장을 통해 다각화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맛볼 수 있었다. 고객들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빅토리녹스의 전문 매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한번에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빅토리녹스가 하나의 우산형 브랜드(umbrella brand) 아래 여러 개의 카테고리 제품군을 가지고 있음을 손쉽게 알릴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수년 동안 아웃렛 네트워크를 축적하며 빅토리녹스 전문 매장을 구축해온 이유다.

-100년 넘게 이어져 오면서 겪었던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인가.

▶우리도 다른 기업들처럼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그중에서 제일 큰 시련은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9ㆍ11테러로 인한 매출 감소였다. 9ㆍ11테러 이후 각 공항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 등 포켓용 칼의 반입이 금지됐다. 당시 빅토리녹스의 총 매출액 중 면세점 매출이 약 30%를 차지했기 때문에 공항 반입 금지의 타격은 컸다. 사실 이는 빅토리녹스가 사업 다각화 전략을 강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소싱(insourcing) 기반의 시스템을 지속하는 대신 초과근무를 줄여 비용을 감소시켰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을 해고하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기업에 임시로 고용시켰다가 데려오는 방편으로 상황을 이겨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는 제품 품질에 관한 한 최고를 지향하는 가치를 고수했다. 고된 시기가 지나가면 좋은 날도 다시 오는 법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다. 이렇게 위기를 함께 이겨내면서 직원들끼리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었다.

-직원들이 빅토리녹스에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빅토리녹스의 전 임직원은 한 가족처럼 친근감이라는 틀 안에 묶여 있다. 직원들과 가까이 지내다보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언제 즐거워하고 무엇에 보람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가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리고 빅토리녹스는 힘든 시기에 직면했을 때도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고 함께 극복하는 길을 택했다. 우리는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면서 서로 신뢰와 존경을 쌓아갈 수 있었다.

-전체 직원 중 20여 명이 장애인이라고 들었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는지.

▶장애인을 고용한다고 해서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인 중에는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장애인 직원들을 일반 직원처럼 각 제품 생산 프로세스에 투입해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 그들의 강한 정신력에서 오는 장점은 약점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 He is…

칼 엘스너 회장은 2007년 그의 아버지 칼 엘스너 3세에 이어 빅토리녹스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엘스너 회장은 가업 승계를 통해 4대째 빅토리녹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직원 1800여 명을 두고 매년 350여 개 모델, 수백만 개 포켓용 칼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아버지인 칼 엘스너 3세는 2007년 아들에게 가업 승계를 한 이후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할 정도로 빅토리녹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매일경제  2012.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