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김창숙(1879~1962)은 ‘마지막 참 선비’라 불린다.
평생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그의 삶을 보면 마지막 참선비라는 말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격동, 파란굴곡의 시대와 함께 한다.
망국과 일제강점기~해방~분단~독재로 이어진 물결 속에 그는 한눈팔지 않고 당당하게 한 시대를 걸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격렬한 항일 독립투쟁에, 해방 조국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와 국토 분단인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단호하게 반대투쟁을 벌인다. 또 반독재 민족통일운동도 치열했다. 반외세, 반분단, 반독재 투쟁에 몸바친 그는 자신의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정치상황에 결국 성균관을 복원, 지금의 성균관대를 설립한다.
‘심산 김창숙 평전’은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에 이어 세번째 내놓은 현대인물시리즈다. 기존에 나온 각종 연구성과물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심산의 삶을 그려낸다. 저자는 “심산의 선비정신과 조국애는 종교의 엄숙주의,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읽게 한다”고 전한다.
김삼웅|시대의창
경향신문 200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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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1만6500원, 538쪽,2006년 출간
한국사에서 선비 정신의 맥은 고려말 조선초의 정몽주.길재로 시작한다. 이후 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조식.이황.이이.정약용으로 이어지지만, 20세기 선비인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은 흔히 남명(南冥) 조식(1501~72)과 비견된다. 조식이'칼을 든 선비'로 불려서만은 아니다. 심산은 평생 남명을 사숙하면서"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이, 자신에게는 추상같이"라는 말을 새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선비'심산은 현대 유학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의 한 끝자락을 보여준 사람이다. 선비 정신이 낡은 유물만은 아니라는 점, 조선조와 또 달리 망국.식민지.해방.분단.독재로 점철된 현대사의 복판을 걸을 때 선비정신이어떻게 책임있는 자세로 연결되는가를 보여줬다. '심산 김창숙 평전'은 주로 역사적 접근을 한다. 활동 중심이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임정 참여, 일제경찰의 고문으로 앉은뱅이 신세가 된 뒤 해방 이후 성균관대 설립, 반(反)이승만 운동과 투옥 생활 등이 주축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너무 엄숙.거룩하다. "대장부.군자.지사를 합친 참선비"라는 저자 스스로의 규정 때문일 것이다. 위인전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섬세한 뉘앙스도 부족하다. 심산을 다뤘다는 것 자체가 반가우나, '끌림'이 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중앙일보 200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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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보길 뒷간 보듯’ 평생 싸운 참선비
“이승만이와 싸워온 사람도 많겠지만 나만큼 독하게 맞서온 이도 드물 거요! 그가 12년간 집권하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공개로 대통령 하야
권고를 했지만, 그 스스로가 하야했더라면 지금쯤 하와이로 도망쳐 있지 않아도 되었을 거요.”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한
1960년, 심산 김창숙(1879~1962)의 결기는 쩌렁쩌렁했다. 이 때가 여든 둘, 노혁명가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성균관대학 초대
총장직에서 쫓겨나 여관을 전전하며 병마와 싸우던 중이었다. 자주통일운동, 항일지사 추모사업, 백범 암살 진상규명…. 독재자가 물러난 자리에서
심산이 한 일을 보면 그는 이승만과 철저히 대척점에 서 있다. 심산과 이승만의 악연의 사단은 반외세정신.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조선 위임통치 청원서’를 제출하자 분노한 심산은 일찍이 신채호, 박은식과 더불어 “미국의 노예되기를 원한
매국행위”라며 이승만의 탄핵을 요구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격렬한 항일투쟁, 해방 뒤에는 반독재 민족통일운동. 여든 넷 생애 동안
간단없이 싸운, 훼절 없는 올곧은 삶, ‘칼을 든 선비’ 김창숙은 그래서 빛난다. 그를 일러 ‘마지막 선비’라 하는 까닭이다. <심산
김창숙 평전>(시대의창 펴냄)은 “벼슬 보기를 뒷간과 말죽통 멀리하듯” 하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시대적 소임을 다한 강직한 참선비상을
그려낸다.
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가 빠졌음을 안타까워한 심산은 전국 유림들 서명을 받아 ‘파리장서 사건’을 일으키고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를 주도했다. 최남선의 <일선융화론>을 보고 감상문을 쓰라는 간수에겐
“일본에게 붙어버린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를 읽고 싶지 않다”며 집어던졌다. 1958년 보안법 날치기 땐 손자 등에 업혀와
악법 무효 호소문을 뿌렸고 짧은 혁명정국엔 친일파를 제거하라고 촉구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현대인물시리즈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며 차기작은 <만해 한용운 평전>이다.
권귀순 기자
한겨레 200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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