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조금 받는 할머니 장학금 기증
받아든 邑사무소 직원 눈물을 글썽이자
“장례 치를 돈은 있으니 걱정들 말아요”
지난 2일 경북 칠곡군 북삼읍사무소에 이 마을 ‘억척할머니’ 장봉순(83)씨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다. 현금 600만원. “20년을 꼬박 모았다”며 “커가는 아이들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었지만, 읍사무소 직원들은 몸둘 바를 몰랐다. 몇 사람은 눈물을 글썽였다. 직원 박경미(여·32)씨는 “맞벌이하면서도 힘들다며 아우성친 내가 부끄럽다”고 했다.
장 할머니는 매달 35만원을 받는 기초생활 수급자이다. 가족 없이 20년째 홀로 살고 있다. 집도 6·25 때 피란민용으로 지은 3평 남짓 슬레이트 단칸방이다. 초등학교도 다닌 적 없다.
“정말 힘들게 모은 돈이지만 남을 돕는 게 이렇게 즐거울지 몰랐어. 아프면 병원 갈 돈하고, 죽어 장례 치를 돈은 남겼으니 걱정들 말아요.”
할머니는 17살 때 대구로 시집왔다. 가구점·목공소를 한 남편과 한때 넉넉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30년 전 친구 빚 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다 날리고 남편 따라 북삼읍에 왔다. 남편은 늑막염·결핵을 앓다가 20년 전 끝내 떠나갔다.
“과수원에서 날품도 팔고, 공사장 청소도 했어. 옷도 가전제품도 버린 것을 주워다 썼고. 하루 1만원이건 2만원이건 무조건 모았지.” 할머니는 16년 전 마을금고에 통장을 만들었다.
“없이 사는 나를 도와주는 세상을 위해 언제고 조금이라도 갚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통장 잔액은 며칠 전 600만원이 됐다.
장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도 주변을 둘러보고 나눠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삼읍사무소는 장 할머니의 장학금을 늘리는 운동에 나섰다.
최재훈기자
조선일보. 200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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