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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아름다운 世上

성균관대 주변 식당 47곳 장학금 25억 '맛있는 기부'

"학생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게가 있지요"
'성대 패밀리가 떴다' 기부금 모금 캠페인 다섯달 만에 성과

 

16일 낮 12시쯤,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 있는 20년 역사의 33㎡(10평)짜리 중국집 '우보장'에서 김영균(48) 사장과 직원 오영복(여·58)씨가 쉴 새 없이 주문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학생회관 101호에 세트 메뉴 A요? 금방 갑니다. 201호랑 205호도 배달해달라고요? 그것도 금방 갑니다."

배달원이 김 솟는 짬뽕, 윤기 흐르는 자장면을 철가방에 싣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우보장 손님은 절대다수가 성대생이다. 우보장 배달원은 하루 평균 짬뽕 40그릇, 자장면 60그릇을 성대 곳곳에 배달한다. 음식값은 15년째 짬뽕 4000원, 자장면 3000원이다. 한 그릇 팔면 900원씩 남는다.

김 사장은 지난 연말 성대에 찾아가서 기부금 1억원을 내겠다는 약정서를 썼다. 자장면을 11만 그릇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이다.


▲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근처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정복남씨가 16일 자신의 가게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일대 식당 업주들은 성대에 기부금 25억원을 모아 낼 예정이고, 정씨도 여기에 1억원을 보태기로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성대 학보에서 이웃 중국집이 학교에 기부금을 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자존심 상하대요. 그 집은 우리보다 나중에 생겼거든요. 그 길로 학교에 쫓아가서 '지금껏 몰라서 못 냈다'고 했어요. 아깝지 않으냐고요? 에이, 학생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게가 있지요."

우보장뿐 아니다. 성대 주변 47개 식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25억원을 내기로 약정했다. 작년 9월 성대가 '성대 패밀리가 떴다'라는 제목으로 기부금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다섯달 만이다.

참여한 식당은 대부분 10년 넘게 성대 앞에서 영업해온 '관록 있는' 맛집들이다. 30년 된 한식집 '정이가네'의 정복남(여·57) 사장은 1억원을 내기로 했다. 정 사장은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쳤다. 14살 때 고향인 경북 영일군 양포리를 떠나 서울 사는 삼촌 집에 왔고, 삼촌 음식점 일을 거들다가 성대 앞에 자기 가게를 냈다. 지금은 음식점 3개를 운영하는 자칭 '갑부'다. 성대에 기부금 내기 전에도 서울대, 방송통신대, 동성고에 100만~200만원씩 장학금을 냈다.

"내가 기부한 돈으로 장학금 탄 학생들이 종종 감사 편지를 보내와요. 아이고, 기부금 안 내본 사람들은 그 기분을 몰라. 난 학생들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장사하다 힘들 때 꺼내보려고."

1979년 개업한 '형제갈비' 이공숙(여·54) 사장도 지난 연말에 3000만원을 내기로 약정했다. 단골들은 이 사장을 '이모'라고 부른다. 얼굴 절반을 가리는 큼지막한 검은 뿔테 안경에 장발을 휘날리던 80년대 단골들이 지금은 경찰서장, 대학교수, 기업체 부장이다. 이 사장은 사위도 성대생을 얻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갈비 사 먹으러 드나들던 단골 영문과 학생 심모(32)씨에게 "내 딸 한번 만나보라"고 한 게 인연이 됐다. 이 사장은 "단골 학생들이 졸업하고 10년, 20년 지나도 찾아온다"며 "그 정(情)을 생각해서 장학금을 냈다"고 했다.

서울 명륜동 캠퍼스뿐만 아니라, 경기도 수원 자연과학캠퍼스 인근에 있는 식당들도 참여했다. 수원 율전동에서 15년째 이탈리아 식당 '피렌체'를 운영 중인 이영현(여·57) 사장은 66㎡(20평)짜리 조그만 가게로 시작했다. 돈이 없어 밥만 먹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10여년 만에 찾아와서 외상값 내민 학생도 있었다. 지금은 330㎡(100평)짜리 대형 식당이다. 이 사장은 "학생들 덕분에 젊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기부금 1억원이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수원 율전동 '아람가든'의 장영석(49) 대표는 지방대를 졸업한 뒤 취직이 안돼 고민하다가 성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내 꿈을 이루게 해준 공간인데, 기부금 1억원이 아깝겠냐"고 했다.

성대는 기부금을 낸 식당 주인들에게 가게 입구에 붙일 수 있는 '성균 패밀리' 스티커를 준다. 학교 홈페이지와 성대학보 등을 통해 '패밀리 식당'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성대 4학년 양철민(28)씨는 "자기 돈 내는 건 누구나 아까운데, 식당이 학교에 기부금을 냈다고 해서 무척 놀랐다"며 "앞으로 회식은 무조건 '성대 패밀리' 식당에서 하겠다"고 했다. 작년 8월 성대를 졸업한 김현수(28)씨는 "대학 시절 단골집에 오랜만에 갔는데 '성균 패밀리'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고향 집 같았다"고 했다.

이 기부 운동 아이디어를 낸 성대 김성영(55) 대외협력팀장은 "대학과 인근 상권이 하나의 지역 공동체를 이루자는 운동"이라며 "상인들에겐 '학교에 공헌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학생들에겐 장학금이 생긴다"고 했다. 성대는 '패밀리' 100호점이 나올 때까지 기부금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기부금을 낸 식당 주인들을 학교에 초청해 만찬도 열 예정이다.


조선일보  200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