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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窓)/-. 혼란한 世上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전격 사퇴

술레이만 "무바라크, 군에 권력 이양"..시민혁명의 승리

 

엘바라데이 "수십년 압제에서 해방"..집권당 사무총장도 사퇴.탈당

각국 정상들 "역사적인 날" 환영..`포스트 무바라크'에 관심 집중

지난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8일간 계속된 역사적인 시민혁명의 힘에 굴복해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것은 이집트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지형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집트 국민과 국제사회의 퇴진 압박에도 사임을 거부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은 11일 권력을 군에 넘겨주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고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밝혔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날 국영TV를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 공화국 대통령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며 "그는 군 최고 위원회에 국가 운영을 위임했다"고 발표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소식이 전해지자 이집트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인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모인 시민 수십만 명은 "국민이 체제를 무너뜨렸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시민혁명의 성공을 자축했다.

카이로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이집트 대부분의 지역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기를 흔들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경축했고, 자동차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집트 야권 지도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집트가 수십 년 간의 억압에서 해방됐다"며 "오늘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집트 야권 최대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오늘은 이집트 시민이 승리한 날"이라면서 "혁명의 주요 목적이 달성됐다"고 밝혔다. 야권은 민주적인 개혁 방안을 놓고 군부와 협상을 벌일 방침이다.

무바라크에 이어 이집트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호삼 바드라위 사무총장은 이날 "현 단계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 당이 필요하다"며 사무총장직의 사임을 발표하고 탈당했다고 현지의 알-하야트 TV가 전했다.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은 군 최고위원회는 내각을 해체하고 국회 기능을 중단시키는 한편 헌법재판소장과 함께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알 아라비야 TV가 보도했다.

앞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오후 헬리콥터 편으로 카이로의 대통령궁을 떠나 시나이 반도의 홍해 휴양지인 샤름-엘 셰이크로 떠났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전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주되 오는 9월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날 타흐리르 광장에 10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하는 등 민주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퇴임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10월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이슬람주의자 장교가 쏜 총탄에 암살되자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뒤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무바라크의 퇴진 소식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각국 정상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와의 평화적인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은 "오늘은 이집트 국민에게 역사적인 날"이라며 "그의 사퇴가 민주주의를 향한 협상의 길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고,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한 무바라크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퇴를 통해 이집트 국민에게 봉사를 했다"며 "오늘은 대단히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도 무바라크의 사퇴를 "이집트 혁명의 시작"이라며 환영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너무 이르다"면서 "이집트의 민주화를 향한 변화가 폭력 없이 진행되고 (1979년 맺은 양국 간) 평화협정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무바라크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포스트 무바라크'가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방 관측통들에 따르면 쿠데타 같은 급변사태 없이 차기 대통령 선거가 민주적으로 치러질 경우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가장 근접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현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제3의 후보가 점진적인 온건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을 규합, 의외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술레이만 부통령, 사미 에난 참모총장,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의외의 인사가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  201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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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플파워`, 30년집권 무바라크 몰아냈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이어 18일만에 독재 종식
높은 물가와 실업률, 경제난앞에 철권정치도 `무기력`

30년 전제 정치도 경제난에는 무기력했다. 높은 물가와 일자리가 없어 놀아야 하는 현실 앞에 이집트 국민은 전제정치의 폭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플 파워`는 마른 들판의 불처럼 갑자기 타올라, 이집트를 활활 태우고 다른 아랍과 외국의 독재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무바라크, 시위 18일 시위에 `사임` 결정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 요구 시위 18일 만에 사임했다. 조기사임 압력을 거부한 지 하루 만에 손을 들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11일(현지 시각) 국영 TV를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군에 넘기고, 수도 카이로에서 그의 휴양지 샴 엘-셰이크로 떠났다고 발표했다.

이집트군은 성명을 발표, 일련의 헌법상 개혁을 추진하고 비상조치법을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시민은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요구했다.

성명은 오마르 부통령으로 권력이 위임됐음을 시사하고, 앞으로 개혁의 이행을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군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며, 대통령 직을 승계하게 될 술레이만 부통령과 권력 분점을 할지 주목된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수도 카이로의 타하리르 광장 등 거리에는 시민들이 "이집트는 자유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환호하고 있다.

시위하는 시민은 눈물을 흘리며 자축하고 "국민이 체제를 무너뜨렸다"라며 환호하고 있다. 사람마다 "알라우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고 외쳤다.

◇어떻게 진행됐나..경제난으로 시작해 무바라크 버티기로 혼란

경제난과 전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이집트 국민이 시위를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25일.

앞서 열흘 전쯤인 1월14일, 튀니지에서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젊은이의 분신자살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 열흘 만에 지네 알 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을 쫓아낸다.

수천 명의 이집트 시민은, 높은 물가와 실업률 등 경제난을 가져온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집권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수십명이 넘기 시작한 가운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며 귀국, 시위대를 이끌기 시작했다.

놀란 무바라크 대통령은 1월29일 내각을 해산하고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으로 임명, 정국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시민들의 시위는 더욱 확산됐다. 진압 명령을 받은 군은 강제 진압을 거부하고 사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2월1일 무바라크는 대국민연설을 통해 "오늘 9월까지 대통령직 임기를 끝내고 물러나겠다"라고 점진적 개혁을 다지했으나, 시민은 "믿을 수 없다"며 즉각 퇴진을 더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 등 서방세계도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질서있는 이양`을 촉구하며 반대편에 섰다.

시위대에 중산층과 부유층, 그리고 지식인들이 합류하기 시작하고, 외국에 나가 있던 지도자들도 속속 귀국, 무바라크 퇴진을 압박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슬람 형제단 등 시위대 주도세력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무바라크 퇴진`이라는 전제 조건에 막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무바라크 친위 시위대들이 시민과 충돌,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이집트 정국이 다시 혼란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루 전인 10일, 무바라크 `조기 퇴진` 가능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군부가 군 최고회의를 열고 국정 장악을 다짐하며 해결의 가능성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무바라크는 9월까지 권좌를 지키겠다며 다시 시민의 열망을 외면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개혁을 맡기는 식의 점진적 개혁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시민은 더 분노했다. 무바라크는 더 이상 서있을 곳이 없었다.

이데일리   201.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