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의 중부고속도로변에 위치한 농다리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일제시대인 1932년에 발행된 "상산지"등에는 고려초기 임장군이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나 삼국시대 축조설의 이견도 있다.
1976년에 지방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된 농다리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본래 28칸으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25칸만이 남아 있으며 길이는 93m에 이르고 있다.
농다리는 사력암질의 붉은 색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후 넓은 상판석을 얹어 놓은 형태로 다리의 전체 모습은 마치 지네가 기어 가는 모습과도 흡사한데 이러한 형태와 모양이 그동안 오랜세월의 수많은 여름철 장마나 홍수로 다리가 잠기어도 유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원인이라는 설명도 있다.
1980년대 농다리 건너의 산너머에 있는 초평저수지를 확장하여 다시 축조하기전에는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농로로 긴요하게 이용되어 왔으나 저수지의 축조로 하천변의 많은 밭들이 수몰되고 또한 농촌사회의 변화로 땔감을 거의 하지 않는 관계로 요즘은 명절때의 성묘객이나 저수지 낚시꾼들이 주로 이용하는 수준이다.
1976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기전에는 조상대대로 농사철이 끝난 후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약간의 보수를 하여도 잘 보존되어 왔었건만 문화재로 지정된후에는 훼손되어도 주민들은 전혀 손을 쓸 수가 없고 관공서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지정한 건설업자들이 매년 보수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장마만 지면 자주 무너져 내리고 어떤때는 볼품사나울정도로 심하게 여러곳이 무너져 내려 지금은 우리들이 어린시절 보아왔던 원래의 돌들이 많아 사라지고 인근 산에서 캐낸 다른 돌들로 보수를 하여 원형도 변형되고 상당수가 원래의 돌들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수많은 추억과 애환이 서린 돌다리였음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까지
치민다.
땅속에 묻혀진 문화재도 찾아내서 발굴하여 복원을 하는 시대에 돌다리가 무너져 내려 일부 떠내려 갔다면 무거운 돌인지라 멀리 떠내려 가지 않았을 터인데 원래의 돌들을 찾아내 보수를 해야 함에도 인근 산에서 캐낸 다른 돌들로 보수를 하니 문화재로 지정된 후 문화재의 보호라기보다 문화재의 파괴가 심화되는 듯 하다.
또한 다리가 무너져 내려 보수를 해야 할때 조상대대로 보수하여 온 마을주민들을 참여 시키던지 마을에 예산을 지원하여 주민들의 축적된 노하우로 보수하게 했더라면 현재보다는 훨씬 잘 보존되었으리라는 아쉬움속에 문화재로의 지정에 따른 문화재보호 관렵법규들이 진정한 문화재보호를 위한 방도로 개정되거나 시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말만 들어도 가슴설레이게 하는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농다리가 요즘은 중부고속도로변의 안내간판과 방송이나 드라마(6시 내고향, 종이학,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에도 나오고 기업체들의 홍보 달력에도 종종 등장하여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편이다.
명절때나 그밖에 간혹 고향을 가면 농다리를 찾아 보게 되는데 매번 어느 한곳이라도 부서지거나 무너져 내린 모습을 목격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고 무거워짐을 느끼지만 천여년의 시련을 꿋꿋이 지탱하며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농다리가 더이상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하여 후세에 전해야 함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농다리의 설경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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