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필명인 '농다리'는 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故鄕에 있는 아주 오래된 돌다리 이름이다.
지방유형문화재이기도 한 농다리의 건립연대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단지 고려시대니 신라시대니 추측만 할 뿐이다. 라디오방송에서 '전설의 고향'편으로 방송되기도 했었는데 본인의 私見과 일부 견해는 신라시대의 건립으로 추정해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어린시절에는 김유신장군이 놓았다느니 임경업장군이 놓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곳 진천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김유신장군의 출생지로 당시 진천지방은.신라와 백제, 고구려의 접경지역으로서 군사적 목적으로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어쨋은 농다리의 축조와 관련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농다리를 보며 우리 조상들의 건축술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훌륭했던가를 가늠해 보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농다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동네앞 금강지류를 가로 지르는 다리로서 한아름정도 크기의 돌들을 쌓아 교각(현재는 약 2~3m정도이나 오랜세월 퇴적으로 묻혀 실제는 이보다 훨씬 높았으리라 추정)을 세우고 그위에 넓적한 돌(약 150 X 70cm정도)을 얻어 놓은 다리(25칸.약 100m)로 '지네'가 기어가는 형상으로 약간 구부러진 형상인데 이런 모양이기 때문에 그동안 오랜세월 수많은 여름철 장마나 홍수로 다리가 잠기어도 떠내려 가거나 파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원인이라는 설명도 있다.
농다리는 본인은 물론 고향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철이면 이곳 냇물에서 멱을 감고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기도 한 곳이다. 남자. 여자애들이 다리 양쪽끝으로 갈라져 검은 빤스(팬티)등를 벗어 돌다리위에 놓고 멱을 감을 때면 물장구 치고 노느라 옷가지가 바람에 날려 떠내려간 줄 도 모르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도 있고, 여자아이들 옷가지를 감추기도 하며 장난을 치는가 하면, 장마철에는 다리가 물에 잠길때 건너편 밭의 참외나 수박,오이등을 서리하기 위해 한길이상의 흙탕물이 넘실대는 냇물을 건너는 치기를 부리기도 했던 추억들이 있다.
여름방학때는 으레 오후 2시경이 되면 친구들과 소를 끌고 나가 농다리 건너편 산에 올려 놓고 우리들은 농다리에서 오후 한나절 내내 멱감고 놀다가 대여섯시가 되면 방목했던 소를 찾으러 산에 오르며 산딸기, 머루 등을 따 먹기도 하고 소를 잊어버려 소를 찾으러 온 산을 헤메었던 기억들, 파리를 쫓느라 연실 꼬리를 흔들어 대던 소의 꼬랭이가 나무가지등에 걸려 소꼬리가 다 빠지는 바람에 부모님께 혼이 났던 기억들,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인지라 시골 출신 학생들은 방학때면 집안의 일손을 돕거나 소풀을 먹이고 소풀을 베어 와야 했으니 여유롭게 공부할 시간은 커녕 공부는 엄두도 못냈던것 같다.
당시의 도회지 학생들이나 좀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 또한 요즘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리에서 고무신을 떨어트려 떠내려가는 바람에 부모님에게 고무신을 잃어 버렸다고 꾸중을 듣기도 했던 농다리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부에서 놀러온 선후배들에게 이곳 모래사장이 늘 텃세를 부리는 장소가 되어 동네에 좋지 못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 장소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이곳 좁은 농다리위로 상여가 지나가는 모습은 또한 장관이기도 했다.
몇년전에는 mbc드라마(종이학)의 촬영장소로, 그리고 요즘은 kbs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간혹 나오기도 하는 농다리이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와 함께 우리들에게 그 많은 추억을 간직한 농다리도 많이 변하고 변화를 맞고 있어 아쉬울뿐만 아니라 명절때면 다리 건너 조상님들께 성묘하기 위해 항상 건너는 다리인데 예전의 다리모습이 조금씩 훼손되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옛날에는 다리 건너 산넘어에 밭들이 많았고 여름철엔 풀을 베고 겨울철에는 땔감나무 때문에 중요한 농로로 긴요하게 이용되었는데 가을 농사철이 끝난후에는 동네사람들이 조금씩 손을 보아 그런대로 보존이 잘되어 왔는데 지난 80년대 중반에 산넘어가 저수지로 변하며 밭들이 수몰되어 지금은 저수지 낚시꾼들이나 명절때 성묘객 정도만이 이용하는 형편이 되고 또한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훼손되더라도 당국이외에는 동네사람들도 손을 쓸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국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보수를 해도 전에 동네사람들이 한 것만 못하고 오히려 변형을 가져 왔을 뿐 만 아니라 더 부실한 보수인지 매년 손을 보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아마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수하는 것이 옛날 선조들의 과학적인 건축술을 따를 수 없고 비록 시골의 동네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보수 기술만도 못한것 같다.
또한 우리 어린시절에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전기 밧데리를 이용하여 돌다리 구석구석을 쑤셔대면 팔길이 만한 순수 자연산 뱀장어등을 한 바께스씩이나 잡아가곤 했었는데 요즘은 거의 잡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이 오염되어 아이들이 수영도 잘 안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그런데 농다리가 중부고속도로 옆에 위치하여 몇년전부터 고속도로변에 커다란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더니만 연전에 들으니 연차적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이곳 주변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소식이고 보면 기쁨이나 환영보다는 어려을적의 옛모습이 많이 훼손되고 주변 환경이 얼마나 오염될까 생각하니 그저 씁쓰름할 뿐이다.
다리 건너편에 선산이 있어 조상들과 함께 우리 자손 대대로 묻힐 영원한 나의 고향인데... 수익을 위한 개발도 좋지만 선조들이 이어온 아름다운 산천과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 후대들에게도 잘 전해주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농다리.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이는 추억도 많이 간직한 농다리가 잘 보존되어 더이상 변형이나 훼손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7월31일(토요일)저녁 8시에 "농다리 축제"가 있는 시간에 맞춰 동네 竹馬故友들의 모임인 '향토회'를 농다리에서 갖기로 하여 설날이후 오랫만에 농다리를 찾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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